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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 말기에 일본군에 편입되면 잠재적 친일파인가?

그제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서 김 추기경의 관련 글들(이글루스 포스팅)을 좀 보고 있었는데, 하나 눈에 띄는게 있더군요. 일본군 경력에 대한 문제. 연합뉴스에서 그 사진을 올려놓은 것이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았는데, 꽤 오래된 떡밥 이야기였습니다. (한 마디로 뒷북...;;)
그런데 이 문제를 놓고 그 블로그에서 논쟁이 일어났는데, 어떤 특이한 덧글을 보았습니다.

"직접 해외로 나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지 않고 국내에 남아 있었던 것은 일제 통치에 대한 순응이며, 이는 곧 잠재적 친일이다"

... 글쎄요.
이 분은 너무 말씀을 쉽게 하고 계십니다. 그 분한테 도로 묻고 싶습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직접 실천할 의지는 있냐고.

우선 유명한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좀 언급하면(이건 일반인들 차원의 얘기가 아님), 춘원 이광수가 1920년대 초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했다가 망명 독립운동가라는 처지에 회의를 느끼고 국내로 들어와 민족개조론 제기, 친일 등으로 전락한 사례가 있기는 합니다. 물론 그가 적극적 친일을 한 것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해외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한다는게 그렇게 쉬운 일일까요?

일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부주석이자 해방 이후 좌우합작운동, 남북협상 등을 주도했던 우사 김규식은 고아 출신이었고, 병약한 몸에다가 비(非) 정치적 기질의 사람이었다고 알려졌는데도 그는 망명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는 일단 그것 하나만으로도 굉장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즉 해외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것은 의무이거나 당연한 일인 것이 아니라, 아무나 택하기 어려운 고된 일 그렇기에 대단히 훌륭한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독립운동가들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고요.

당대 지식인이었던 이광수가 현실을 외면하고 귀국하여 일개인으로서만 조용히 살아갔다면 그 자체로도 어느 정도 비난받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 강도는 친일파와는 분명히 달라야 합니다(물론 가정입니다만). 하물며 일반인들이 그렇게 산 것이 과연 죄일까요?

'침묵이나 중립이 잠재적 동의'라는 말은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국내의 일반인들이 일제에 항거하지 못했다고 단순히 잠재적 친일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모두 뛰어들 만큼 그렇게 형편이 좋은 것도 아니었고, 해방 이후 독재정권에 항거할 때에도 말 그대로 전부 다 들고 일어난게 아닌 것처럼 이 문제도 한 발짝 물러서서 봐야 합니다.

저도 친일파 무척 싫어하고 독립운동가들을 존경합니다만, '제가 그 시대 환경에 놓여 있었다면'이라는 가정을 해봅니다. 과연 나는 독립운동에 투신할 자신이 있는가. 소시민으로서 조용히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죄가 되어서는 안 되지요. 당시에는 독립이 정말 누가 뛰어들면 곧바로 실현되는 그런 것도 아니었고, 일제의 지배가 영원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런 점에서 친일파 논의도 좀 나누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주제에서 벗어나고 저는 근현대사 전문가가 아닌 고로 패스~)

제 첫 포스팅에서도 언급하였듯(친일파 청산에 딴지거는 논리에 대한 비판 하나.),
당시 국내에 있었던, 그래서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군에 편입된 사람들을 전부 친일파로 몬다면 도리어 진성 친일파들을 옹호하는 논리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인들은 전부 친일파였는데, 누구를 욕할꺼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이렇게 지껄이는 인간들도 있고.


p.s 이건 뭐 이상하게 밑에 공백이 뜨고, 첫 포스팅에 대한 링크도 안 되고... 썩을 이글루스여.
혹여 불편하시더라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어떻게 이걸 손질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ㅡㅡ;

by 두막루 | 2009/02/18 10:25 | 근·현대사 | 트랙백 | 덧글(65)

논리학 공부가 아주 잘 되는구나 - 교육부를 반면교사로!

어제 학교에서 실용논리학(informal logic) 시험을 보았습니다.

형식논리학과는 달리 주장 자체에 대한 오류들이나 비논증적 설득 등이 포함된 분야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중 제가 공부하면서 접한 것 하나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좀 뒷북일 수도 있지만


폄하하기 : "...이지만", "그래도", "그러나" 등의 접속사를 사용하여 앞 문장을 평가절하하는 신공. - 『실용논리학 입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엮음


... 보면서 아주 적절한 사례가 금방 떠올랐으니,


친일파 청산이 철저하지 못했던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밑줄친 '민족정신에 토대를 둔 새로운 나라의 출발은 수포로 돌아갔다'라는 표현은 지나친 표현임. - 교육부의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요구사항

밑줄 앞의 표현을 쓰느라 교육부가 얼마나 고충(?)을 느꼈을지 짐작이 아주 자~알 갑니다.
명색이 한 나라의 교육 부서라는 데가 이런 논리적 오류나 범하고 있으니... 반면교사로 삼기 딱입니다.


p.s 국가에서 나서서 반민특위를 탄압, 해산시킨 마당에 저 것이 지나친 표현이라고?
오히려 나는 "이승만 정권이 친일파 청산에 미온적, 소극적이었다"는 기존 교과서 표현이 "완곡 어법"이라는 왜곡을 벌이고 있다고 보는데. ㅡㅡ;

by 두막루 | 2008/12/09 20:55 | 잡담 | 트랙백 | 덧글(0)

친일파라는 개념에 대해서 한마디.

남해 다녀온 사이 이글루스에서 친일파라는 표현에 대한 논쟁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한데 글들을 읽어보니 대경할 지경이군요.

각설하고, 친일파라는 단어에 대해서만 한마디합니다.


1. '친일파'는 "친일파 청산에 딴지거는 논리에 대한 비판 하나" 글에서도 정의했듯이 2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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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잘 알려진 바처럼 "1904년 러일전쟁이 끝난 이래로 일본 제국주의의 정책에 협력하며 자신들의 안위를 지키고 작위 등 온갖 혜택을 받은 사람들"로 정의할 수 있으며, 다른 하나는 말 그대로 "일본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려는 생각이나 태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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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람된 말이지만, 많은 분들이 이것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현재 일본과의 동맹을 외친다고 친일파라고 부릅니까? 한국은 60년대 미국을 정점으로 일본과 함께 3각 공조 체제를 구축했으니, 그 이래의 한국과 한국인들은 전부 친일파입니까?


친일파라는 단어의 애매함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보아야 겠습니다. 후자처럼 단순히 일본과 친밀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친일파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친일파'라는 용어 대신에 '부일협력자', '숭일파(崇日派)' 등으로 대체하자는 주장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당연히 이들은 전자, 즉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하며 자신들의 안위를 지키고 작위 등 온갖 혜택을 받은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성급하게 친일파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나, 반일 이승만 정권에 친일파란 있을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이나 모두 친일파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2. 친일파가 정말로 일본을 그토록 좋아해서 친일을 했는가?


친일파는 해방 이후에도 친일을 해야만 친일파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친일파들이 친일을 했던 것이 지탄받는 이유는 외세에 빌붙는 그 성격 때문이지, 오로지 일본에 충성하기 때문 만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물론 일본에 오로지 충성하는 놈들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대부분은 기득권 유지를 위해 탈바꿈을 하는 놈들임을 잊어선 안됩니다.


조선시대 명나라가 망해가는 와중에도 끝까지 모화주의, 존화주의를 내세우던 사대부들 모두가 명나라를 그토록 흠모해서 숭명을 외치고 다녔을까요? 물론 그들 중에도 명나라를 짝사랑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명이라는 주자학적 질서의 힘을 빌어 자신들의 권위를 지키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친일파들은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귀축미영을 박멸하자"고 외칠 정도의 반미파였는데, 광복 이후 이승만 정권 측에서 자신들을 비호해 주니까, 자신들의 기득권만 유지할 수 있다면 바로 친미로 성향을 바꿔버렸습니다.


이승만 정권에 참여했던 친일파들이 이승만 정권을 따라 반일 외교를 벌인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기득권 유지에 있었으니까요.



친일파에 대해 토론하기에 앞서서 이 두 가지는 꼭 숙지해주셨으면 하는 바, 삼가 글을 적습니다.

by 두막루 | 2008/08/17 17:19 | 근·현대사 | 트랙백 | 덧글(7)

친일파 청산에 딴지거는 논리에 대한 비판 둘.

친일파 청산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옛날 얘기인데 뭘 자꾸 들춰내는가?” 이 문제가 옛날이야기라고 생각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친일파 문제는 이미 역사 속의 한 장면이 되었고, 오늘날 “과거사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처리되고 있다.


그러나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역사적 사건은 어떤 것을 막론하고 현재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668년의 고구려 멸망. 지금으로부터 약 1300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사람들이 대개 고구려의 강함을 좋아하는데, 일각에서는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고구려가 강했던 것이 지금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 얼핏 듣기에는 옳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분명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고구려의 멸망은 이후 한국사의 전개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필자는 한국사 최대의 사건이라고 본다). 고구려는 멸망한 반면, 당나라는 명실상부한 세계제국이 되어 자신들의 역사를 숱하게 남김으로써 이후 한-중의 역사 전개는 크게 달라졌다. 이후로 한국이 점차 동아시아의 소국이 되고,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독주하게 되는 것의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고구려의 멸망까지 소급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1000여년 이전의 사건도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친일파와 같은 근대사의 심각한 문제가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은 자명하다.


친일파 문제가 현재까지 거론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사건이 단순히 “근대의 매국매족 행위”로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글 하나를 인용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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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당신들이 일제치하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 일제의 통치가 너무도 가혹해서 할 수 없이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이 분노하는 이유는 단순히 일제하에서 친일했다는 이유가 아니다. 그들도 일제의 통치가 가혹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문제는 친일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친일을 했던 인간들이 친일행위에 대한 일체의 반성이라던가 사과도 없이 그대로 대한민국의 지도층으로 편입되었다는 것이다. 즉 일제하의 친일보다, 해방후의 사과없음이 더 문제가 되는 것이다.

만약 친일 인사들이 '일본놈들이 하도 못살게 굴어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하였소. 이제부터는 그 죄를 뉘우치고 조용히 살터이니 제발 용서하여주시오'라고만 하였어도, 부처님같은 심성을 지닌 우리 국민들은 용서하였을 것이다. 실제로 춘원 이광수의 아들이 '우리 아버지는 폐병환자이니 죄주지 마십시요'하였더니, 순박한 우리 국민들은 '병자를 구박하는 것도 못할 짓이다'하여, 그에 대한 단죄여론을 거둔 바 있다. 그리고 자신이 일본 군대에서 위관급 장교를 지냈다하여, 조용히 근신하다가 주변의 간곡한 설득에 마지못해 건군(建軍)에 참여하였던 이종찬 장군의 예가 있다. 순순히 반민특위에 출두하였던 최남선은 못되더라도, 이종찬 장군처럼 근신은 왜 못하였는가?

(출처 : 다음 카페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의 天狼星主님 글 “친일세력의 물타기 수법 6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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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글에서 언급된 사례 외에도, 천도교의 지도자로 친일파가 되었던 최린이 반민특위에 구속된 사람들 가운데 유일하게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단죄해달라고 하여 그 광경을 목격한 국민들이 같이 울음바다가 되었던 일도 있었다.


문제는 최린처럼 자신의 친일 행위를 사죄한 친일파가 아주 극소수였다는 것이다. 인용글에서 언급된 것처럼 한마디 사죄도, 참회도 없이 친일파의 대부분은 대한민국의 각계각층에서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반민족, 반국가적 행위를 일삼았던 자들이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기에 나라의 기강과 근본이 무너질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우리역사문화연구소의 김용만 소장님은 “친일한 것이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고 있으며 독립운동한 것이 죄송스러운 나라에서, 나중에 나라가 다시 위기에 처했을 때 과연 제2의 독립운동에 나설 사람들이 누가 있겠는가”라고 말씀하신바 있다. 이에 대해서 우리는 곱씹어보아야 한다.


국민들은 “과거사 청산”이라는 말의 어감 때문에 이에 무관심한 것 같아 보인다. 필자가 언급했듯이 친일파든 독재정권의 폭거이든 이런 문제들은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금 이 현실의 문제이다. 국민들의 무관심과 “옛날 일인데 뭘 또 끄집어내느냐”는 논리 속에서 “오늘날의 기득권 세력들이 정당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현실 청산”이라는 이름을 제기하고자 한다. 현실을 청산하는 것은 내일과 미래를 위함이다.

p.s 문정창의 친일 문제와 관련해서는 제가 섣불리 언급한 감이 있고, 글 논지에도 별로 중요치 않으니 언급에서 제외하였습니다.(수정 : 최린이나 문정창처럼 최린처럼)

by 두막루 | 2008/07/27 13:38 | 근·현대사 | 트랙백 | 핑백(1) | 덧글(14)

친일파 청산에 딴지거는 논리에 대한 비판 하나.

예전에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이라는 다음 카페에서 天狼星主님께서 올려주신 글 “친일세력의 물타기 수법 6가지(통일과 미래를 논하자 306번 글)”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친일파 청산에 대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인터넷 기사에 올라오는 댓글 가운데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모든 국민들이 창씨개명하였는데 무슨 친일파를 청산한다는 것인가, 친일파 청산은 마녀사냥이다”

이른바 물타기 수법 6가지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들에게 한가지 묻고 싶은 말이 있다. “그러면 이완용이나 이용구, 송병준 같은 이들도 국민들과 같은 친일파인가? 이들은 용서되는 것이며 전 국민이 친일파였으니 친일파는 없는 것인가?”

한마디로 말해 저런 댓글들은 친일파의 기준과 범위를 무시한 언급이다.


따라서 우선 친일파에 대한 정의와 그 범위를 논해보기로 한다.

친일(親日)이라는 용어는 대략 2가지 의미로 사용되는데, 하나는 잘 알려진 바처럼 “1904년 러일전쟁이 끝난 이래로 일본 제국주의의 정책에 협력하며 자신들의 안위를 지키고 작위 등 온갖 혜택을 받은 사람들”로 정의할 수 있으며, 다른 하나는 말 그대로 “일본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려는 생각이나 태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필자가 여기에서 2가지 의미로 나뉘어진다고 한 것은, 러일전쟁 이전 일본의 힘을 빌리려 했던 갑신정변 세력이나 러일전쟁에서 동양평화를 내세운 일본을 지지했던 손병희 선생, 을사늑약 이전 일본을 우호적으로 바라보았던 이동휘 등의 사례가 전자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근대 한민족에게 일제와 더불어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긴 자들은 전자에 속한 자들이었으며, 친일파라는 용어는 흔히 이들을 가리켜 사용되는 용어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언급하는 친일파가 전자를 가리키는 용어임을 독자 분들께서도 숙지해주시길 바란다.


(따라서 러일전쟁 이전에 일본에 우호적이었던 사례들에 대해서는 앞으로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본 글의 주제가 아니므로 자세한 언급은 않겠지만,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던 갑신정변 세력들 가운데에도 나중에 친일파가 되는 인사들이 나오는 등 사실 경계가 분명하지는 않다. 게다가 갑오개혁 역시 일제라는 외세의 강요 하에 진행된 것이므로 친일의 범위에서 제외시키기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손병희나 이동휘 등이 러일전쟁이나 을사늑약을 기점으로 하여 강력한 항일독립운동가가 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일단은 친일파 시작의 경계를 한반도에 대한 일제의 영향력이 확고부동해지는 계기가 된 러일전쟁 정도로 한정시켜서 보려고 한다)


친일파, 친일 세력의 형성 과정에 대해서는 『우리 역사를 의심한다』의 여러 글 가운데 한국 근현대사의 개척자인 강만길 선생님의 글 “우리 사회의 냉전세력들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다루고자 한다. 이에 따르면 친일파 형성 과정은 크게 3 단계에 걸쳐서 형성, 확대되었다.


첫 번째는 일제의 조선 강점 당시 이에 찬성하고 부역한 대한제국의 황족들과 고급관료들로서 일제 당국으로부터 귀족 대우를 받았던 자들이다. 두 번째는 3·1운동 후 문화통치로 불린 일제의 민족분열정책 때 민족주의 세력 가운데 타협주의로 돌아선 자들로, 이 시기에 각계각층의 친일파들이 양성되었다. 세 번째는 중일전쟁 이후 대륙 침략에 나서게 된 일제가 조선인들에게 전쟁 협력을 요구하면서 확대재생산되었는데, 교육자, 행정 관료, 경찰 관료, 일본군, 만주군 등이 확대 채용되었고 친일파들은 조선인을 침략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선전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흔히 오해하기 쉬운 부분은 세 번째 단계의 친일파인데, 이들 가운데 창씨개명을 강요당하거나 일제의 억압에 못이겨 병사로 동원된 일반 국민들까지 친일파에 속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당시 친일파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대개 첫 번째나 두 번째 단계의 친일파들이 나서는 경우가 많았으며, 일제의 강요라 하기에는 너무나 적극적으로 연단에 나서 일제의 전쟁을 찬양하고 전쟁공출에 앞장선 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어찌 동족을 고문하기로 악명높았던 고등계 형사 노덕술이나 동족을 전쟁터로 내몰았던 일본군 대좌 이응준과 일반 국민들이 같단 말인가? 앞으로 친일파 문제와 관련하여 이따위 망언을 하는 자들은 부디 없기를 바란다. 제아무리 친일파를 옹호하고 싶어도 전 국민들을 친일파로 몰아세운단 말인가? 그런 주장을 일삼는 자신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by 두막루 | 2008/05/04 19:46 | 근·현대사 | 트랙백 | 핑백(2)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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