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뉴라이트

시류(?)에 따라 테러 떡밥을 물며...

백범 김구 선생도 일본인을 상대로 테러 활동을 벌였습니다. 그 점은 그 스스로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테러 활동이라는 표현을 인정하지 않는 겁니까? 당신은 사실을 인정할 줄 모르는 분입니다.



... 는 낚시일 뿐이고!


‘테러’라는 말을 뉴라이트의 일각에서는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지 똑똑히 Let's 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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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전국연합, "백범기념관 철거해야, 안중근/윤봉길은 테러리스트"


[데일리서프라이즈 2007-08-01]


수구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사회집단의 연합체인 뉴라이트전국연합(이하 뉴전연)에 포함되어 있는 비상계엄령선포요청연합(이하 비선연)이 뉴전연의 홈페이지를 통해 민족해방운동(民族解放運動) 최고의 지도자였던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백범기념관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 파문이 일고 있다.


강인한 비선연 상임대표는 뉴전연 홈페이지의 자유토론방에 김구는 지금의 알카에다와 다름없는 악랄한 테러조직인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을 결성하고 민간인의 희생도 불사하는 잔인한 테러를 자행한 사람이다.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살인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는 범죄인 것이다.라는 글을 투고했다.


강 대표는 또 "한 나라의 수상인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安重根)의 용기는 가상하지만 그는 일본이라는 나라에게는 해충과 같은 존재였을 뿐이다. 우리는 안중근이나 김구 같은 테러리스트를 절대 영웅시하고 우상화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곧 아시아 최고의 경제대국인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이기 때문이다(注 : 여기 황국신민 추가요~)." 면서 백범 선생에 이어 안중근 의사까지 모욕하는 글을 썼다.

강 대표는 "나도 대한민국 땅에서 태어나 대한민국 주권을 가진 대한민국의 국민이지만 백범기념관 같은 테러리스트들을 기리는 건물을 세우고 그들을 영웅시하고 공경하면서 일본 정치인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때마다 온 몸에 칼을 세우고 일본을 노려보는 행위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으로 상당히 부당하게 생각된다(注 : 예예 독립운동과 대일본제국의 세계진출은 같은 거죠). 일본인들에게도 그들의 조상을 공경할 권리는 있는 것이다." 면서 모자란 역사인식을 보여주고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을 지지하기도 했다.


강 대표는 이어 이명박 행정부와 집권 여당을 비난하는 촛불 시위에 대해 규탄하면서 "현재 광화문 거리에서 친북 공산주의 추종자들에 의해 불법으로 자행되는 촛불 시위야말로 도로 점거와 폴리스 라인 침범, 전경 폭행 등을 못본척 한 채, 빨갱이 집단인 민주당과 MBC의 PD수첩이 유포한 거짓 괴담에 낚인 어리석은 시민들이 난동을 부리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구나 안중근의 살인 행위를 신성시하고 일본의 조선 침략에 대해서 치를 떨고 있는 것은 모순이다. 임시정부와 한인애국단은 알카에다보다 더 무서운 테러 조직이었고(注 : 한인애국단은 대마왕이었구뇽) 자살 테러 지원자는 넘쳐났다. 알카에다의 자살테러행위자들을 영웅시하는 무자비한 집단 이기주의적 시민의식을 가진 자들인 이슬람 원리주의 조직인 지하드와 현재의 촛불 시위대는 무엇이 다를까?" 라고 덧붙이면서 "우리 비선연은 일본이 독도를 왜 자국 영토라고 끈질기게 주장하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고 끝맺었다.



이같은 비선연 측의 주장에 대해 독립운동사 연구 전문가들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신용하 이화여대 인문학술원 석좌교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광복군과 특무대를 조직하여 공작 활동을 벌인 것은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우리 나라를 무력침략하여 강점했기 때문에 이를 몰아내고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손문을 중심으로 한 중화민국 호법정부, 소비에트연방 노농정권, 폴란드 및 핀란드의 망명정부, 프랑스의 드골 정권도 우리 임시정부를 민족해방운동의 중심 기구로 인정해 정식 정부로 승인한 것이다.면서 일본 제국주의 세력도 이것을 테러라고 규정하지 않았다. 홍커우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으로 시라카와 대장이 사망했을 때에 일제는 이것을 임시정부의 특공작전으로 생각하고 시라카와 대장이 피살된 것이 아니라 전사했다고 발표했다."

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의 건국에 있어 부모와 같은 역할을 했던 민족해방운동 최고 기관이었다. 그리고 임시정부의 주석인 백범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조국과 겨레를 위해 희생한 민족 지도자이고 한국인들의 큰 스승이다.면서 한국 국민으로서 백범 선생과 임시정부를 모독하는 언행은 곧 대한민국이라는 주권 국가가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현실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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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반말체를 쓸 것이니 양해바람)

나는 현재 뉴라이트의 테러 운운 문제의 근본 원인과 책임이 일정정도 그들에게도 있다고 본다. 분명 대안교과서를 낸 뉴라이트 재단은 뉴라이트 전국연합과는 다른 단체라고 한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이 두 단체가 다른 단체인지 어떤지 모르는 것이다. 듣보잡 단체이니 당연한 결과(...)


왜 뉴라이트라는 (이미 명예롭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이름을 꼭 고수해서 이런 오해(ㅡㅡ;)를 사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들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제3자들이 “두 단체는 다른 단체이니 오해하지 마세요~” 하고 알리기 운동이라도 벌여야 한단 말인가 !


암튼 이런 문제로 뉴라이트 재단을 비난할 생각은 별로 없을 뿐이고!



p.s 정작 테러에 대해서는 gyuichaanism terrorism의 영향으로 쓰지 않았지만, 저 기사에 나오는 비선연인지 뭐시깽인지 하는 단체가 얼마나 병맛인지를 느껴보시라고 포스팅했을 뿐이고!

by 두막루 | 2008/12/18 14:32 | 시사 | 트랙백 | 덧글(26)

뉴라이트 대안교과서를 훑어본 소감.

뉴라이트 대안교과서에 대해서는 인터넷에 부분적으로 인용된 자료들만 보아 왔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글을 보니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보았다는 분들이 계셔서 저도 한번 찾아서 훑어보았습니다.


처음 책을 찾았을 때 느낌(...)

"이거 교과서 맞는감? 와따시 크지 OTL" (← 일반 교과서와 크기가 같을 거라고 생각한 1人)


이건, 서막에 불과했습니다.

책 내용을 훑고, (...)


... 뭐 어차피 비판할 생각으로 펼쳐든 책도 아니었기에 문제되는 구절을 일부러 찾아보진 않았습니다. 근데 이거 고등학교 교과서로는 분명히 부적합... 내용을 떠나서, “고등학교 수준에 비해 난이도가 지나치게 높습니다.” 이거 교육부가 금성출판사 교과서 수정하라고 요구했던 말 중의 하나인데, 이 교과서는 전체적으로 떡밥이 줄줄 걸려듭니다.


대안교과서라는거, 정말 교과서로 내놓은거 맞나요? 그냥 시범으로 내놓은건가... 뭐 그럼 할 말은 없지만(...)
구체적으로 내용을 짚지 않은 것은 제가 빌리지 않았기 때문이니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 버스 안에서 보기 그렇다고 생각한 1人)


p.s 자신들이 편찬한 교과서라 그런지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새로운 역사 인식의 지평을 연 것인양 소개하고 있는데, 낯간지러운 줄 모르는 분들이라 그런가 봅니다. 역시 정신 수양 승리 작렬 에서 저는 그들을 못 따라잡습니다.

p.s 2 뒷 표지에 추천사 써준 분들 명단을 보니 역시나 내가 예상했던 분들이 포함되었음.

by 두막루 | 2008/12/04 20:58 | 잡담 | 트랙백 | 덧글(2)

뉴라이트는 어설픈 탈민족주의를 버려라.

계간지 『내일을 여는 역사』 24호(2006년 여름호)의 서두는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시작하고 있다. “신우익과 탈민족의 기묘한 동거, 그 본질은?”


신우익, 즉 뉴라이트는 세계적 현상이다. 그들이 세계화를 위해 탈민족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일견 타당한 주장이다. 그런데 왜 저 계간지의 머릿글에는 뉴라이트와 탈민족주의를 기묘한 동거로 표현한 것일까? 그 이유는 오로지 한국 뉴라이트의 이상한 특성에 있다.


본래 탈민족주의는 민족주의가 지닌다는 배타성, 가부장성 등을 비판하며 민족을 근대 이래 만들어진 상상의 공동체라 주장하는 사조로, 국내에서는 한양대 임지현 교수가 대표적인 탈민족주의 사학자이다. 탈민족주의의 제기와 관련하여서는 동아일보 2006년 3월 4일자의 기사 “민족주의 VS 탈민족주의 논쟁”에서도 소개된 바 있다.


저 기사에는 임지현 교수 외에도 3명의 연구자가 더 소개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이영훈 교수와 박지향 교수는 바로 뉴라이트의 대표적 저작인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의 저자들이기도 하다. 책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해방 이전인 일제강점기로부터 이후 이승만 정권기에 이르는 기간에 대해서 다룬 책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왜 그들은 탈민족주의를 이 시기, 즉 근·현대사(흔히 ‘과거사’라고 부르는)에만 적용하는가? 그들의 저작이 대체적으로 이 시기만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필자의 이러한 비판이 옳지 못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희한하게도 현실에서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잡아야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란 일종의 민족 내지 국가 논리(공동체 논리)가 아니던가? 탈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어째서 현실에서는 이런 주장을 펴고 있을까? 그들은 분명 기존 사학의 민족주의적 해석을 극복하는 것도 목표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다.

참고로 임지현 교수는 탈민족주의를 특정 시대에만 적용하지는 않는다.


두 번째 문제. 뉴라이트는 이상하게도 근·현대사에 탈민족주의를 적용하면서도, 여전히 국가주의 논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대안교과서가 출판된 이후 탈민족주의의 주도자인 임지현 교수도 비판한 바 있다. 임지현 교수는 탈민족주의 관점을 일관되게 견지하여 국사(國史)라는 틀을 벗어날 것을 주장해왔는데, 뉴라이트 사학은 오히려 국가주의의 울타리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필자는 임지현 교수의 탈민족주의, 국사해체론을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임지현 교수는 최소한 자신의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결국 역사 해석을 이상한 방향으로 하여 잘못된 결론을 도출하는 결과를 빚고 만다. 2가지 예를 들겠다.


1. 김구와 이승만에 대한 이상한 상반된 평가.

대안교과서에서 가장 두드러진 평가 가운데 하나랄 수 있는 부분이다.

뉴라이트는 여기에서 이승만의 대한민국 건국을 “공산주의 국제세력의 공세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어하고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기틀을 잡는 데 어느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커다란 공훈을 세웠다”고 하여 긍정적으로 높이 평가한 반면, 김구에 대해서는 남북협상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하였으며 교섭 실패 이후에는 “대한민국의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이는 역사를 정말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라면 거꾸로 평가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백범 김구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고수하는 것도 팽개친 채 남북협상에 임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바로 분단국가 수립을 어떻게든 막고 오로지 통일국가, 하나된 민족국가의 수립을 달성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그런 김구가 남북한 어느 쪽에도 참여하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학계에서는 통일사관의 관점에서 김구를 높이 평가해왔다.


일례로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의 『대한민국史』 1권에서는 당시 김구가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심정에 대해 자세하게 기술되어있으며(39p),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며 임시정부를 유지해온 김구에게 통일정부가 아닌 반쪼가리 정부는 하나가 아니라 열 개, 백 개를 세워도 임시정부의 법통을 물려줄 수 없고, 정통성을 인정할 수 없는 그런 집단일 뿐이었다“(40p)고 하여 김구의 단독정부 수립 반대가 갖는 역사적 의의를 높게 평가하였다.


김구는 단독정부 수립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인데, 뉴라이트 사학자들은 같은 사건을 두고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다”라고 하여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독자분들께서는 납득이 되시는가?


탈민족주의를 주장하면서 국가주의를 유지하는 이상한 기준 때문에, 백범 김구는 애매하게 평가절하당한 반면, 우남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은 높이 평가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는 국가가 세워지기도 전이었으므로 국가주의를 적용하는 것은 부당한 것이다. 굳이 적용하려면 국가주의와 친화적인 민족주의 관점을 적용할 수 있는데, 이에 따르면 이승만의 분단국가 수립은 부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뉴라이트의 기준, 놀랍지 않은가? 똑같은 사건을 보고도 김구와 이승만에 대해 이렇게 학계와 정 반대의 평가를 내리는 당신들은 에리뜨!


2. 탈민족 관점과 국가주의적 논리로 이승만 정권을 재조명(?)하다.

1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안교과서에서는 이승만의 건국은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다.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건국이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승만 정권의 반민특위 해산이나 반이승만 독재투쟁에 대한 탄압 등 심각한 잘못들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대안교과서는 “이승만 대통령을 위시한 우파 집권세력은 좌파 공산주의자들이 끊임없이 체제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친일파 청산보다 내부 단결과 반공태세가 더 급하다고 생각하였다.(145p)"고 서술하고 있다. 과연 친일파 청산을 미룬 것이 정당한 행위였는가?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아도, 친일파들은 반역자들이 분명하다. 1910년 나라를 빼앗긴 이래 1948년 국가가 세워지기 이전까지 친일파들이 벌인 행각은 반(反) 국가적 행위였는데 어째서 이들을 청산하지 않은 것을 비판하지 않는가? 빨갱이만 반 국가 분자인가?(누구의 반 국가 역사가 더 긴데?)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승만 정권은 긍정적 평가보다는 부정적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위의 교과서 서술에서는 이승만 정권을 위협하는 세력들을 좌파 공산주의자로 규정하고 있지만, 공산주의자들만 있었던 것은 분명히 아니다. 유학자 독립운동가로서 김구와 같은 노선을 걸었던 심산 김창숙의 반이승만 독재투쟁은 그의 위상에 걸맞게 영향력이 지대한 사건이었으며, 철저한 자유민주주의자였던 장준하 역시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항하여 4·19 혁명이 일어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독재정권에 대항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던 사람들의 노력을 언급하지 않고, 이승만 정권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올바른 역사 인식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국가를 세운 것에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승만 정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김구를 깎아내린다거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반독재 투쟁을 벌인 사람들의 노력을 배제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게다가 한마디 덧붙여, 역대 독재정권들은 민족 중흥 등 나름대로 민족주의의 명분을 내걸고 정권을 유지하였는데, 이들을 탈민족주의의 관점으로 재조명한다는 것은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위의 문제들을 종합하여 보면, 뉴라이트 사학자들이 과거사에 탈민족주의를 적용하고 그러는 와중에도 국가주의 논리를 유지하는 것은 역사 인식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친일파, 단독정부(분단국가) 수립, 분단정권의 독재 강화 등 민족적 평가가 필요한 근·현대사에 대해 오히려 탈민족을 적용하려고 드는 것은, 이러한 과거 문제를 안고 있는 우파로 하여금 면죄부를 부여하려는 발상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뉴라이트는 차라리 국가주의 논리나 기존 우파(한나라당, 조중동 등)와 결별하고 철저히 뉴라이트답게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지켜라. 아니면, 굳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운운하면서 한나라당이나 조중동 등과 한 배를 타고 싶다면 어설픈 탈민족주의를 버려라.

뉴라이트에겐 후자의 길이 현실적이겠지만, 이는 결국 서구로부터 뉴라이트라는 간판을 빌려온 구 우파에 불과했다는 것을 시인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p.s 1 참고로 임지현, 박노자 등의 탈민족주의자들은 가부장제, 민족주의의 억압성 등을 비판하는 진보적 논리를 펴는데 반해(필자는 탈민족을 진보로 생각지는 않지만, 일단 그들이 현재 진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같은 탈민족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뉴라이트 사학자들은 극우적 인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내일을 여는 역사』에 신우익과 탈민족의 기묘한 동거라 표현된 까닭이다.


p.s 2 이번으로 적어도 뉴라이트에 대한 비판이 3번째로군요. 순간 떠오르는 주제(흔히 삘feel 받았다고 하는...)에 따라 글을 쓰는 적도 있기 때문에, 우연히 이렇게 되었습니다. 뉴라이트 비판을 위한 목적으로 블로그를 만든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이를 끝으로 별로 비판할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제 자신이 근·현대사 전공자가 아닌 까닭에 비판할 능력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by 두막루 | 2008/07/21 11:06 | 근·현대사 | 트랙백 | 덧글(7)

근·현대사 교과서 고치기에 대한 단상.

근래에 꼬깔님께서 과학 교과서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신 글을 보았다. 교과서는 학계의 정설을 우선적으로 담게 되어있는데,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도 틀렸을 정도인 것을 보면 굉장히 심각한 일이다. 이외에도 과학 교과서는 신문에 몇 차례에 걸쳐서 고칠 필요성이 있다는 기사가 올라온 바 있다. 그러나 문제는 과학 교과서에만 있지는 않다. (필자의 관심 분야인 관계로;;) 역사 내지 사회 교과서를 들여다보면 역시 문제가 만만치 않다.


이쯤 되면 역사 교과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를 독자 분들께서도 파악하셨을지 모르겠다. 바로 근·현대사 교과서 고치기 문제 때문이다. 이미 뉴라이트는 노무현 정권 시절에 자신들이 만든 교과서 시안을 공개한 바 있었다. 그러나 뉴라이트 사학의 주장은 학계의 정설이 아니었던 까닭에 말 그대로 그들만의 교과서 시안으로 끝났다.


그런데 올해 들어 뉴라이트가 이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대안교과서를 시중에 출판하고,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내용을 고쳐야 한다고 직접 나서서 주장하고 있다. 이전 글 자학사관 류의 주장이 대두된 것과 마찬가지로,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은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마디로 정권이 교체되었으니, 이 기회에 “좌(左) 편향된 교과서를 고쳐야 겠다”는 것이 그들의 목적인 것이다. 이명박 정권도 조금씩 이에 편승하는 발언을 내고 있다.


그러나 정치 혹은 경제 단체인 뉴라이트나 대한상공회의소, 한나라당 등이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든 간에, 역사 교과서를 고치는 문제에 그들이 적극 개입하려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과연 역사 교과서는 ‘좌 편향’ 이외에 어떠한 문제도 없는 것일까? 현재 한국의 역사 관련 교과서로 중·고등학교 『국사』,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고등학교 『세계사』의 4권의 책이나 있고, 이외에도 각종 사회 교과서에 역사 관련 내용들이 포함되어있는데, 문제점이 그것 하나밖에 없을까?


국사 교과서의 앞부분 하나만 살펴보자. 국사 교과서는 고조선을 ‘군장국가’로 설명하고 있다. 이른바 ‘군장국가(고조선) -> 연맹왕국(부여, 초기 고구려) -> 고대국가(삼국)’ 라는 등식. 그런데 이미 학계에서는 고조선을 고대국가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교과서에는 고조선의 건국 연대를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라 “기원전 2333년이라고 전한다”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이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태반이니 일단은 학계의 정설로 되어있는 기원전 10세기 건국설에 따라 살펴보겠다(필자가 이 정설에 동의한다는 뜻이 아님).


고조선이 최소한 기원전 1000년경에 탄생한 국가라면, 한(漢)나라 무제의 침략으로 망한 것이 기원전 108년이므로 최소한 9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셈이다. 그런데 거의 천년이나 되는 기간 동안 고조선이 군장국가 단계에 머물렀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다. 어찌 천년이나 되는 기간 동안 국가가 발전하지 않고 정체되었단 말인가?


특히나 옆 동네를 살펴보면 이는 더더욱 설득력이 없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중원(中原)이라는 옆 동네에서는 이미 상주(商周)시절에 군장국가를 탈피하고 종법제도가 나왔으며 춘추전국시대에는 패자(覇者)가 되겠다고 경쟁하다가 각기 왕을 칭하고 전쟁을 벌이는 등 이미 고대 국가의 수준에 도달했다. 아마도 시황제의 진(秦) 제국이나 한(漢) 제국을 보고 군장국가라거나 연맹왕국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런데 최소한 기원전 10세기에 건국되었다는 고조선이 주(周)나라나 연나라, 진·한과 부딪히며 근 900년을 보내왔는데, 여전히 군장국가 단계를 탈피하지 못했다면 참으로 이보다 더한 어불성설이 없다.(이는 비유하자면 오늘날 미국은 현대적인 체계를 모두 갖춘 국가인데, 옆 동네 멕시코는 전근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이야기와 같다)


고조선이 당시 세계제국이던 한나라와 전쟁할 때만 해도 수만 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1년 이상을 버텼는데, 이런 말들을 듣고도 고조선을 군장국가라 부른다면 그 사람은 의도적으로 한국사를 낮추어 보는 자인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교과서가 고조선은 군장국가라 되어 있고, 역사 교육에서도 이 등식은 항상 버젓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의 대표라 할 수 있는 『국사』의 첫머리, 아주 작은 것도 아닌, 한국사를 이해하는 틀인 고조선의 국가적 단계에 대한 문제부터가 틀렸는데 나머지 내용들에도 문제가 많을 것임은 불문가지다. 이미 학계에서는 고구려의 시조를 광개토태왕릉비문을 따라 추모왕(鄒牟王)이라 부르며 부여의 동명왕(東明王)과 구분하고 있는데, 교과서에는 아직도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이라는 이름으로 서술되어있는 등 문제점은 많다.


필자가 조금 장황하게 역사 교과서의 잘못된 부분 가운데 하나를 설명하였는데, 필자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지금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고치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문제에 관심이나 있기는 한 것일까?” 그들이 현재의 시국, 정치를 어떻게 바라보든, 학문적 영역이며 학생들에게 교육의 대상인 역사 교과서를 고치는 것은 그들이 역사학에 관심을 갖지 않는 한은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그들이 근·현대사의 특정 부분에만 관심을 갖고서 고치려고 적극 개입하는 것은, 이미 그들 스스로가 역사 교과서를 학문적 차원에서 수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자기 입맛에 맞게 고치려고 하는 것일 뿐임을 드러내고 있는 셈인 것이다.


더군다나 좌 편향이라고 말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근거를 들어야 하는데, 그들은 교과서가 좌 ‘편향’되었다는 것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적이 없다. 단지 자신들의 입장에서 몇몇 주요한 내용을 달리 서술했을 뿐이다. 이렇듯 근거조차 확실하지 않은 좌 편향 문제보다, 고조선의 국가적 단계에 대한 문제가 잘못 기술된 것이 역사학에서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에겐 교과서를 함부로 고칠 권한이 없다. 이미 교과서를 학문적 영역이 아니라, 정치적 시녀로 전락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다. 한 발 물러서서, 뉴라이트가 노무현 정권 시절 시안을 낼 때까지는 좋았다. 물론 뉴라이트 자체가 이미 정치 단체로 출범했지만, 교과서 시안을 발표할 때는 분명히 학문적으로 대응한 것이었고, 그것이 곧바로 교과서가 되지는 않는 것임을 그들도 알았다. 엄연히 교과서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학계의 정설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학설의 가치가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이다(오히려 당시 폭력으로 대응했던 4·19 관련 단체들이 더욱 문제가 컸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이에 편승하여 교과서를 고치라고 주장하거나, 정부의 권위에 힘입어 자신들이 출판한 대안교과서를 교과서로 채택하려고 하는 것은 이미 그들의 목적을 모두 보여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정권이 교체되었다고 역사 교과서가 수정되어야 하다니, 역사 교과서가 정치의 들러리인 줄 아는가? 특히나 최근에 교과부 장관의 발언("편향된 역사교육에 따라 청소년들이 반미, 반시장적 성향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과 국무총리의 발언("학자에만 맡겨두지 마라.")은 이들의 목적을 아주 선명히 보여주고 있다.


과거 80년대 재야사학자들이 국정 교과서인 국사에 자신들의 내용을 반영하려고 할 적에는 독재정권 시절이었으니까 나름 이해가 된다(게다가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엉성한 것인지는 차치하더라도, 정치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민주화된 시대에 정부의 권위에 편승하여 역사 교과서를 함부로 뜯어고치려 한다면, 그들은 영원히 역사에 오점을 남길 것이다.


p.s 참고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고치려고 하는 사람들과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새겨들었으면 한다. 교과서를 어떻게 고치든, 한국의 청소년들은 대개 그것에 별 관심이 없으며 내용이 달라졌다고 큰 영향을 받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교과서는 단지 입시, 수능을 위한 참고서일 뿐이니까. 그들에게 역사의 관점에 대해 생각할 기회는 없으며, 단지 달달 외우고 끝나는 것일 뿐이니까. (즉, 역사 교과서 내용상의 문제점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교육의 방법을 바꾸어야한다는 의미이다)

by 두막루 | 2008/07/12 13:33 | 근·현대사 | 트랙백 | 덧글(8)

자학사관과 긍정사관.

자학사관이라는 말은 이전부터 있어왔다. 간단히 말하면 기존 한국 근·현대사의 연구가 스스로를 자학하고 있으며, 따라서 긍정사관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로서, 국내 사학계에서는 뉴라이트 계열에서 주장한 것이 시초라 할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비판도 이미 제기된 바 있다. 자학사관이란 표현은 본래 일본에서 나온 말이다. 근대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각종 침략과 만행에 대해 기술하는 것이 일종의 자학 행위라며, 비교적 최근에 일본 극우 세력들에 의해 제기된 논리이다. 그러다 보니 뉴라이트 자학사관에 대한 비판은 주로 새역모(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등 일본 극우세력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미 이전에 제기되었고 이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는데, 최근에 와서 필자가 자학사관에 대한 글을 올리는 이유는 아마 독자 분들께서도 잘 아시리라 생각한다. 한나라당이 10년 만에 집권에 성공하면서 이 논리가 다시 강하게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중심이 되어 주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필자는 이 논리를 주변의 몇몇 매체들을 통해서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이에 필자가 접한 매체들 가운데 강렬한 기억이 남는 3개의 신문 기사를 비판하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역사 인식이란 어떤 것인지 마지막에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먼저 현 국사편찬위원회의 정옥자 위원장. 3개의 기사 가운데 문제점이 큰 편은 아니지만 국사편찬위원장이라는 점 때문에 필자가 가장 먼저 언급하고 싶은 인물이다. 얼마 전 동아일보에 두어 차례에 걸쳐 정 위원장 관련 기사가 나갔었다. 특히 칼럼에 정 위원장의 논조가 강하게 담겨 있다. 제목은 “훼손된 국가 정통성 되살아났나”. 제목에서도 이미 자학사관과 긍정사관의 논리가 짙게 배어있음을 알 수 있다. 정 위원장은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을 자랑스러운 역사라 언급한다. 그래서 이전 기사에서도 건국일을 중시하는 언급이 나왔다. 정 위원장에게 단독정부(분단국가) 수립이라는 기존 학계의 비판은 자학사관인 것이다.


정 위원장은 칼럼에서 대한제국 -> 대한민국으로 국호를 바꾼 점을 들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강조한다(정통성 문제에 대해서는 차후 글을 달리하여 언급하겠지만, 필자는 무의미한 것이라고 본다). 게다가 정 위원장은 이전 기사에서 친일파 문제에 대해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당시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는 것 자체가 문제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참 뒤의 정권이 너무 급하게 흑백을 가르다 보니 젊은 세대에게 잘못 알려진 사실도 있어 분열만 더 커졌습니다”라고 언급하며, 국민통합을 중시한다. 필자가 “친일파 청산에 딴지거는 논리에 대한 비판 하나” 글에서 언급했듯이, 친일파에는 분명히 기준이 있다. 역사학자, 특히 국사편찬위원장이라는 직에 있는 사람으로서 저런 언급을 할 수 있는가?


2번째는 한 동아일보 기자의 칼럼이다. 최근 뉴라이트 대안교과서의 출판에 대해 “긍정과 희망의 대안교과서”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칼럼이었다. 외국인들도 놀라는 한국의 자랑스러운 역사에 대해 수치와 죄의 역사라고 폄훼하는 시각이 있었다면서 이 부정의 역사관은 결국 ‘아버지 죽이기’로 나타났다고 언급한다. 물론 몇 년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 발의에서 열린우리당의 어떤 의원이 보여준 행태에 문제점이 있었다는 점은 필자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언급은 더욱더 가관이다. 그대로 인용해 보겠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은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과거를 부정할 것인가, 긍정할 것인가의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은 개화기 이래 수많은 선각자들의 노력의 결실이며 한국인들의 피와 땀으로 세워졌다는 사실을 강조한 역사관이다. 조상에 대한 ‘감사’와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역사를 제대로 볼 수 있다면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 허둥대지 않아도 된다.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는 한국인들의 병든 마음과 혼란에 빠진 지성을 긍정의 힘으로 치유해 보려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마지막 3번째 기사 내용을 언급하고 이에 대한 비판을 하고자 한다.

3번째는 『먼나라 이웃나라』로 유명한 이원복 교수가 중앙일보에 게재한 만화 “이원복의 세계사 산책”의 64. 역사의 상처 편이다.

이 교수는 각국의 치욕의 역사에 대해 언급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만화를 게재하였는데, 문제는 마지막 한국에 대한 언급에 있다. 우리에게 일제강점기가 상처로 남아 있고 이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고 하였는데, 그 이유를 지겹게도 아픈 데를 후벼 판(“과거사 캐기, 친일분자 색출응징, 대한민국 정체성 흔들기”) 사람들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마지막으로 더 이상 역사의 상처를 건드리지 말자면서 끝을 맺고 있다.


자학사관과 긍정사관. 물론 필자도 긍정적으로 볼 만한 부분은 그렇게 보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분명히 대한민국의 역사에도 긍정적이고 훌륭한 역사, 놀라운 역사가 있다. 세계적으로도 아주 놀라운 수준의 경제 성장을 이뤄 냈고, 민주화의 쟁취 또한 훌륭한 역사였다. 한국은 과거 나라조차 잃었던 시절에서 이제 세계 10위권의 국가로 발돋움했다. 이 정도면 이미 한국은 단순한 소국은 아니다.


그러나 역사에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 ‘포폄’이라고 하는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과거,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해가기 위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실에 대한 비판이 분명히 필요하다. 세계 어느 역사도 마찬가지이지만, 한국사도 자랑스러운 역사만 있었던 것은 분명히 아니다. 고구려 전문가인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의 김용만 소장님은 “고구려가 훌륭했던 역사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중국은 대국으로 성장한 반면 한국은 점차 작은 나라로 축소되어간 이유를 알기 위해 고구려가 어떻게 멸망하였으며, 고구려사에 대해서도 포폄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 근·현대사에도 분명 많은 문제점들이 있고, 지금도 이 문제는 유효하다. 고구려의 내분과 멸망 등 잘못된 역사가 결국 한민족의 약소화를 초래한 것처럼, 고대이든 근·현대이든 역사의 문제점들은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번째 기사의 기자는 친일파, 분단, 5·16 군사정변 등 근·현대사의 문제점들을 비판하는 것을 ‘조상 죽이기’로 보면서 뉴라이트 대안교과서는 긍정의 교과서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보다 더욱 심각한 언어 폭력이 없다. 아무리 자기 조상이라도 잘못된 점이 있으면 비판을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자기 조상이라고 비판을 전혀 해서 안 된다면, 역사를 왜 공부하는가? 그저 이러이러한 역사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외우려고 공부하는가?


3번째 이원복 교수의 만화 역시 가관이다. 친일파 문제를 언급하고 과거사(어떤 역사이든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필자는 ‘과거사 청산’이란 용어를 ‘현실 청산’으로 대체해야한다고 본다)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행위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인가? 도대체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무엇인데, 친일파를 비판하면 정체성이 훼손된다고 하는 것인가? 이러한 논조를 펴는 자들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친일파와 분단국가를 건설한 이승만 정권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이미 시인하고 있는 것임을 아는가?(물론 대한민국은 이승만과 친일파들만의 역사가 아니다. 4000만 국민들의 역사였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민주화, 경제 성장 등을 이루어낸 자랑스러운 역사‘도’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보다 ‘한민족의 정체성’을 고려한다)


이쯤 되면 결론은 명백해진다. 자학사관이라는 표현을 함부로 ‘남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비판받을만한 역사는 비판해야 마땅하다. 혹여 남한의 긍정적인 역사마저도 전부 부정해버리고 북한만을 찬양하는 자들이 남한 역사학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면 뉴라이트와 동아일보 등의 자학사관이라는 대응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겠다만, 뉴라이트와 동아일보 등에게는 아쉽게도 현 역사학계의 정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 근·현대사의 1세대 연구자로 꼽히는 서중석 교수는 저서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대사를 부정적으로만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일선 교사들에게 학생들이나 서민들이 현대사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소재나 에피소드를 개발하자고 역설한다. 현대사는 격동의 연속이었고 엄청난 변화와 발전이 수반되었기 때문에, 정치사나 경제사나 소재 개발에 따라서 흥미를 끌 수 있는 내용이 의외로 많다. 더구나 복식이나 주택, 연료의 변화 등 삶의 형태의 변화 그리고 엄청난 사고의 변화, 남녀관계, 가족관계의 변화나 영화, 가요 등 대중문화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현대사에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자료들이 수두룩하다.

문제는 현대사를 부정적으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 나는 미군정의 잘못이나 이승만, 박정희, 신군부의 반공독재, 인권유린 행위를 은폐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한국인도 상당한 수준으로 성숙했고 시민사회의 모습도 잡혀가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걸맞는 역사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진실은 외면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책의 저술에서도 각별히 유념했지만, 현대사를 가르칠 때 학생들이 현대사를 긍정적으로 이해하도록 마음을 많이 쓰고 있다. 해방이 얼마나 혁명적인 변화를 수반했는가, 그래서 역사상 처음으로 기본적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되었고, 상당히 빠른 수준으로 보통선거를 실시할 수 밖에 없었던 점 그리고 교육의 확대로 한글세대가 대거 탄생하고 토지개혁이 이루어져 1950년대에 1960~1980년대 경제발전의 초석이 놓였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가르친다. 특히 나는 한국 사회를 발전시킨 역동적인 힘을 중시한다. 역동성의 기반인 평준화가 왜 그렇게 빨리 성취되었나를 설명하고, 1956년 정, 부통령 선거 등 여러 선거에서 유권자의 한 표가 독재정권을 위협했던 것을 강조한다.“


자학사관이라는 표현은 조금만 바꾸어 말하면 남한 역사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자들은 나라의 정체성을 흔드는 자들이고, 이들은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자들이라는 말이 된다. 이 얼마나 위험한 언어 폭력인가. 이러한 표현을 남발하는 것은 과거 빨갱이를 남발하며 사실관계를 떠나 조금이라도 의심되면 모두 잡아들였던 옛 반공주의 독재정권 시절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현재 자학사관 논리는 정부 권력이 나서서 주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이승만, 박정희 등 역대 독재정권들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을 자학사관이라고 몰아붙이니, 이러한 정신에서 민주주의가 자라날 틈은 없다.


고구려 영류왕이 어떻게 대외정책을 잘못 폈고, 고조선 고구려 백제 등의 멸망시 어째서 내분이 있었으며, 조선의 숭명(崇明)과 모화주의 때문에 어떤 역사가 초래되었는지, 그리고 어째서 일제에 강점되었고 분단국가가 세워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서는 한국사를 이해할 수 없다. 이렇듯 비판이 필요한 부분마저도 자학사관이라는 용어를 들이대며 언어 폭력을 가하는 자들이 부디 없어지기를 바라며 글을 쓴다. 무조건 긍정한다고 옳은 것이 아니다. 착각하지 말자.

by 두막루 | 2008/07/05 13:22 | 근·현대사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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