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간도

왜 맹목적으로 동의만 하십니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경향신문 보면 안되는 이유 (토르끼님 포스팅 트랙백)

안타깝습니다. 왜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한 분도 없지요?

다양하게 생각하고 토론하는 가운데 건전한 토론 분위기가 조성되지, 이렇게 다른 생각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토론이 아닙니다. 또한, 역사 주장을 이렇게 해서는 아니 되지요.


제가 활동하는 역사 카페에서 어떤 분이 쓴 글을 옮겨보겠습니다. 해당 사이트에서도 어떤 분이 경향신문에 대해서 국수주의, 제국주의라고 말씀하신 것에 대한 답변으로 올라온 내용입니다.


--------------------------------------------------------------------

경향신문에서 보인 '간도의 면적' 이 지나치게 넓은 듯하여 문제라는 취지라면 그에 대한 이유는 있다는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그 이유가 옳은지 그른지는 독자가 판단할 문제겠지만요.


그 논리의 핵심은, '강 상류에 대한 경계는, 해당 강이 바다와 접하는 최하류까지 뻗는다' 라는 명제에 근거합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그 경향신문 간도 사진의 논리는, 1. 간도 영유권은 '백두산 정계비' 에 의해 동위토문-서위압록으로 한다. 2. '토문강' 은 송화강의 지류 중 하나(대략 이도백하 정도로 보는 듯)이다. 3. 송화강의 상류 중 하나인 토문강에서 시작된 경계는 토문강에서 송화강을 따라 흑룡강(아무르강)에 접어들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이 논리에 따른 간도 경계가 경향일보 지도상의 간도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에 대해서 모두가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논리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서위압록이라 할 때에는 정계비 부근의 압록강 최상류로부터 압록강이 바다에 접하는 곳까지의 강줄기를 경계로 삼는다면, 같은 논리로 동위토문이라 할 때에도 정계비 부근의 토문강줄기로부터 바다에 이르는 강 전 구간을 경계로 삼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 경향신문상의 그 지도 주장인 것이지요. 참고로 간도 영역을 경향신문 지도와 같이 보는 인식은 이미 고종 대(<북여요선>(1903)의 기사)에 존재했습니다.

--------------------------------------------------------------------


경향신문의 지도는 간도 문제에서 가능한 최대치를 주장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즉 근거도 없이 확대 날조한 것은 아니라는 것임). 그런데 이를 두고 일방적으로 비난만 하는 것은 좋은 자세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저도 간도 문제에 있어서 하류까지 완전히 포함시켜 보는 것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방적인 분위기가 이글루스를 지배하는 것 같아 포스팅해봅니다.

by 두막루 | 2009/05/04 21:35 | 역사 | 트랙백 | 덧글(39)

위구르, 티베트와 함께 - 조선족도 잊지 말자.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기 전 중국에서 위구르, 티베트 사태가 불거져 나왔고, 이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올림픽을 보이콧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바 있었고 이곳 이글루스에서도 이들 소수민족들을 기억하자는 글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필자가 어제 신문을 보면서 그들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족.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 든 생각”의 마지막 덧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조선족들은 중국의 일원으로 나와서 공연했다. 특히 88올림픽 때 한국의 문화로 소개된 부채춤이, 이번에는 중국의 지방 문화로서 소개되었으니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꺼림칙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 장구춤을 추고 있는 조선족.


올림픽 경기가 한창인 이맘때 올리는 것은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한국인으로서 티베트, 위구르 등과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우리의 동포 조선족을 기억해야한다는 생각에 글을 올려본다. 특히 이번 개막식 때 조선족들이 중국인으로서 공연에 나온 것에 대해 조선족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없기를 바라는 것도 글을 올리는 이유의 하나이다.


흔히 듣기를,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가 있으니 한국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정확히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 같은 민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외세에 의해 억지로 분단된 나라는 동아시아 지역에 두 나라가 있다. 한국과 몽골. 몽골은 현재 몽골국, 중국 내 내몽고자치구, 러시아 내 브리야트 공화국(과거 명칭은 브리야트 몽골 자치공화국이었으나 러시아측에서 몽골 명칭을 삭제하였음)으로 분단된 형태이다. 한민족도 자세히 보면 몽골과 비슷하게 3등분할 되어있다. 남북한과 조선족. 현재까지 위구르나 티베트가 중국에 완전히 강점되어있다면, 몽골인과 한민족은 일부가 강점된 셈이다.


우리는 간도(間島) 수복을 늘 주장해왔지만, 정작 잊고 있는 것이 있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 그러나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간도를 수복한다는 것은, 같은 동포들(조선족)이 하나의 정치체 내에서 같이 살자는 의미라는 것을. 간도에 관심 있는 사람이 조선족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사상누각이며, 그곳 주민인 조선족들의 의사를 무시하는 ‘한국적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간도는 그 기원이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의 강역이었고, 조선 세종 시절의 기록에도 그런 인식이 보인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북방 영토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는 명나라 중심의 안정된 국제질서 속에서 영토 분쟁이 잦지 않았던 점과 조선의 지배층이었던 사대부들의 주자학적 인식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지배층부터 별로 중시하지 않았으니, 일반 사람들도 별로 우리 영토라는 인식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엄연히 국가적 차원에서는 만주족 청나라와 갈등을 지속해온 사안이었고 결국 근대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19세기 후반 서구의 침투와 함께 영토와 국경을 중시하는 근대적 영토관이 도입되었고, 이에 따라 신흥 국가 대한제국은 간도에 관리사를 파견하고 함경도에 편입시켰으며,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조항을 포함한 법령을 발포하기도 했다. 이후 일본이 을사조약을 통해 강탈한 외교권으로 1909년, 청나라에게 간도를 넘겨주고 만주 철도 부설권을 넘겨받는다는 간도 협약을 체결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간도는 청에 뒤이은 중화민국(1911)의 영토가 되었지만, 간도를 포함한 만주 지역은 한국이 강점된 이후 항일투쟁의 장소, 해방구로 주목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였다. 독립운동의 주요지역이 되었던 간도의 주민들은 해방될 때까지도 전혀 타국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례로 조선족 중에는 조선의용군에 참여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는데, 이들은 해방되기 전까지는 중국 국적을 갖지 않았고 모두 조선인으로 보았다.


게다가 “중국 정부 - 적대적 공범자의 전형” 글에서 언급하였듯이 중국이 만주를 차지할 권한 같은 것은 없었다. 일제가 만주를 점령하고 만주국을 세운 명분도 이것이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만주는 일본을 쫓아낸 소련의 관할 하에 들어갔다. 소련은 간도 지역을 한민족의 영토로 인정하고 있었고, 따라서 북한에게 넘겨주려 했던 적도 있었다(기사 클릭).


조선의용군에 참여했던 조선족들은 자기 나라 문제가 아닌데도 중국을 돕는다는 취지에 따라 국공내전에 참전했었다. 그리고 내전이 끝나자마자 그들은 곧바로 6·25 전쟁에 투입되었다. 북한 인민군으로서 참전한 사람들도 있었고, 중공군으로서 참전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때까지도 그들은 단지 조선인이었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참전의 댓가로 소련으로부터 만주의 권리를 완전히 인정받은 중국은 전쟁 직후 북한에 가지 않고 남은 그들에게 중국 국적을 일방적으로 통보하였다. 사회주의 국가들 사이에서는 그 나라 공민으로 포함되는 원칙이 있었다고 하지만, 조선족의 경우는 이미 그들이 살고 있던 간도라는 터전이 중국에게 ‘강점’된 상황에서 행해졌기 때문에 부당한 것이었다. 중국 국적으로 강제 편입된 조선족들은 문화대혁명 때에도 민족주의적 측면에서 탄압을 받아야 했고, 이러한 트라우마는 현재까지도 조선족들의 뇌리에 각인되어있다.


이렇듯 중국인으로서 살기를 강요받았던 조선족이기에 그들이 생존을 위해 조국을 중국이라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이러한 역사는 우리민족이 약했기 때문에 일어난 수난이었으며, 강점된 조선족은 물론이고 그들과 분리된 남북한에게도 상처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조선족의 역사를 모르고 우리가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필자가 이제껏 보아온 조선족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글을 보면, 일부 사람들로부터 받은 좋지 않은 감정으로 조선족 전부를 비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필자가 중국에서 만난 조선족들은 같은 문화를 지닌 동포 그 자체였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조선족들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도 참여했던 사람들이다.


필자는 이런 가정을 해본다. 지금 그들이 생존을 위해서 현실적으로 중국이 강하고 대국이니까 중국인으로서 처신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만약 중국이 약해지고 한국이 통일되어 강해진다면 조선족은 한국인이 되고 싶어 할 것이다.


위구르, 티벳 등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중국에게 강점된 채 살아온 조선족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리고 이들이 중국인으로서 살고 있다고 성급하게 ‘중화민족이 다된 놈들’, ‘매국노’라고 비난하지 말자. 정말로 간도를 회복하고 싶다면, 조선족도 같은 민족으로서 포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
출처 - 조선의용군, 국공내전, 6·25 전쟁에 참여했던 조선족 관련 이야기는 『중국조선족 증언으로 본 한국전쟁』을 참고하였고 조선족의 중국 국적 강제 편입과 문화대혁명 피해 문제는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 카페의 미주가효님의 글을 참고하였습니다.

by 두막루 | 2008/08/10 19:45 | 근·현대사 | 트랙백(1) | 덧글(8)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