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구르, 티베트와 함께 - 조선족도 잊지 말자.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기 전 중국에서 위구르, 티베트 사태가 불거져 나왔고, 이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올림픽을 보이콧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바 있었고 이곳 이글루스에서도 이들 소수민족들을 기억하자는 글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필자가 어제 신문을 보면서 그들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족.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 든 생각”의 마지막 덧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조선족들은 중국의 일원으로 나와서 공연했다. 특히 88올림픽 때 한국의 문화로 소개된 부채춤이, 이번에는 중국의 지방 문화로서 소개되었으니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꺼림칙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 장구춤을 추고 있는 조선족.


올림픽 경기가 한창인 이맘때 올리는 것은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한국인으로서 티베트, 위구르 등과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우리의 동포 조선족을 기억해야한다는 생각에 글을 올려본다. 특히 이번 개막식 때 조선족들이 중국인으로서 공연에 나온 것에 대해 조선족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없기를 바라는 것도 글을 올리는 이유의 하나이다.


흔히 듣기를,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가 있으니 한국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정확히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 같은 민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외세에 의해 억지로 분단된 나라는 동아시아 지역에 두 나라가 있다. 한국과 몽골. 몽골은 현재 몽골국, 중국 내 내몽고자치구, 러시아 내 브리야트 공화국(과거 명칭은 브리야트 몽골 자치공화국이었으나 러시아측에서 몽골 명칭을 삭제하였음)으로 분단된 형태이다. 한민족도 자세히 보면 몽골과 비슷하게 3등분할 되어있다. 남북한과 조선족. 현재까지 위구르나 티베트가 중국에 완전히 강점되어있다면, 몽골인과 한민족은 일부가 강점된 셈이다.


우리는 간도(間島) 수복을 늘 주장해왔지만, 정작 잊고 있는 것이 있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 그러나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간도를 수복한다는 것은, 같은 동포들(조선족)이 하나의 정치체 내에서 같이 살자는 의미라는 것을. 간도에 관심 있는 사람이 조선족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사상누각이며, 그곳 주민인 조선족들의 의사를 무시하는 ‘한국적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간도는 그 기원이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의 강역이었고, 조선 세종 시절의 기록에도 그런 인식이 보인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북방 영토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는 명나라 중심의 안정된 국제질서 속에서 영토 분쟁이 잦지 않았던 점과 조선의 지배층이었던 사대부들의 주자학적 인식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지배층부터 별로 중시하지 않았으니, 일반 사람들도 별로 우리 영토라는 인식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엄연히 국가적 차원에서는 만주족 청나라와 갈등을 지속해온 사안이었고 결국 근대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19세기 후반 서구의 침투와 함께 영토와 국경을 중시하는 근대적 영토관이 도입되었고, 이에 따라 신흥 국가 대한제국은 간도에 관리사를 파견하고 함경도에 편입시켰으며,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조항을 포함한 법령을 발포하기도 했다. 이후 일본이 을사조약을 통해 강탈한 외교권으로 1909년, 청나라에게 간도를 넘겨주고 만주 철도 부설권을 넘겨받는다는 간도 협약을 체결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간도는 청에 뒤이은 중화민국(1911)의 영토가 되었지만, 간도를 포함한 만주 지역은 한국이 강점된 이후 항일투쟁의 장소, 해방구로 주목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였다. 독립운동의 주요지역이 되었던 간도의 주민들은 해방될 때까지도 전혀 타국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례로 조선족 중에는 조선의용군에 참여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는데, 이들은 해방되기 전까지는 중국 국적을 갖지 않았고 모두 조선인으로 보았다.


게다가 “중국 정부 - 적대적 공범자의 전형” 글에서 언급하였듯이 중국이 만주를 차지할 권한 같은 것은 없었다. 일제가 만주를 점령하고 만주국을 세운 명분도 이것이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만주는 일본을 쫓아낸 소련의 관할 하에 들어갔다. 소련은 간도 지역을 한민족의 영토로 인정하고 있었고, 따라서 북한에게 넘겨주려 했던 적도 있었다(기사 클릭).


조선의용군에 참여했던 조선족들은 자기 나라 문제가 아닌데도 중국을 돕는다는 취지에 따라 국공내전에 참전했었다. 그리고 내전이 끝나자마자 그들은 곧바로 6·25 전쟁에 투입되었다. 북한 인민군으로서 참전한 사람들도 있었고, 중공군으로서 참전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때까지도 그들은 단지 조선인이었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참전의 댓가로 소련으로부터 만주의 권리를 완전히 인정받은 중국은 전쟁 직후 북한에 가지 않고 남은 그들에게 중국 국적을 일방적으로 통보하였다. 사회주의 국가들 사이에서는 그 나라 공민으로 포함되는 원칙이 있었다고 하지만, 조선족의 경우는 이미 그들이 살고 있던 간도라는 터전이 중국에게 ‘강점’된 상황에서 행해졌기 때문에 부당한 것이었다. 중국 국적으로 강제 편입된 조선족들은 문화대혁명 때에도 민족주의적 측면에서 탄압을 받아야 했고, 이러한 트라우마는 현재까지도 조선족들의 뇌리에 각인되어있다.


이렇듯 중국인으로서 살기를 강요받았던 조선족이기에 그들이 생존을 위해 조국을 중국이라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이러한 역사는 우리민족이 약했기 때문에 일어난 수난이었으며, 강점된 조선족은 물론이고 그들과 분리된 남북한에게도 상처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조선족의 역사를 모르고 우리가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필자가 이제껏 보아온 조선족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글을 보면, 일부 사람들로부터 받은 좋지 않은 감정으로 조선족 전부를 비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필자가 중국에서 만난 조선족들은 같은 문화를 지닌 동포 그 자체였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조선족들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도 참여했던 사람들이다.


필자는 이런 가정을 해본다. 지금 그들이 생존을 위해서 현실적으로 중국이 강하고 대국이니까 중국인으로서 처신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만약 중국이 약해지고 한국이 통일되어 강해진다면 조선족은 한국인이 되고 싶어 할 것이다.


위구르, 티벳 등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중국에게 강점된 채 살아온 조선족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리고 이들이 중국인으로서 살고 있다고 성급하게 ‘중화민족이 다된 놈들’, ‘매국노’라고 비난하지 말자. 정말로 간도를 회복하고 싶다면, 조선족도 같은 민족으로서 포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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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조선의용군, 국공내전, 6·25 전쟁에 참여했던 조선족 관련 이야기는 『중국조선족 증언으로 본 한국전쟁』을 참고하였고 조선족의 중국 국적 강제 편입과 문화대혁명 피해 문제는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 카페의 미주가효님의 글을 참고하였습니다.

by 두막루 | 2008/08/10 19:45 | 근·현대사 | 트랙백(1)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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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한단인의 빈수레 at 2008/08/19 02:44

제목 : 두막루님. 전에 말씀하신 고려 동북계 논문입니다. ..
위구르, 티베트와 함께 - 조선족도 잊지 말자.두막루님께서 말씀하셨던 허인욱씨의 2001년 석사 논문을 한 일주일 전에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시간이 안나서 읽진 못했는데 오늘 삼시 세끼 먹으면서 이 논문을 읽어봤습니다.다음은 해당 논문입니다. (허인욱(2001) 高麗 中期 東北界 範圍에 대한 考察)...뭐랄까.. 논문이 많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금치 못하겠더군요. 문제제기 자체는 꽤나 신선했지만 문제제기를 뒷받침하는 주요......more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8/08/10 20:06
[간도는 그 기원이 사실상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확실한 우리의 강역이었고] 란 대목이 혹 윤관의 9성 개척을 염두에 두신다면 지배 기간이 얼마되지 않는데 강역으로 설정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뒤따르는 듯 합니다만..

그리고 윤관이 두만강 넘어서 9성 개척을 했다고 하기에도 다소 어려운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두막루 at 2008/08/10 20:15
저는 고려의 국경이 천리장성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천리장성으로 보는 것이 조선시대의 기록에 근거한 것이라는 논문을 소개한 글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려 전기에는 여진족이 요나라와 고려의 영향 하에 있었다고 봅니다. 최소한 금, 원이라는 정복왕조 시절을 제외하면 간도가 고려-조선으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죠. 세종의 인식도 그러한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현재 학계에서 주장하는 '동북 9성 함경도설'은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용만 선생님께서도 지적하셨지만, 17만 대군이 겨우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 출진했다면 국력 낭비이죠.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8/08/11 11:29
말씀하신 글에 대해서는 저도 알지 못하는 관계로 궁금하군요. 소개 좀..(굽신굽신)

그런데 여진이 요와 고려의 영향하에 있었다는 것은 여진족 일부가 고려에 책봉을 받고 있음 때문이라고 생각되는데 그것이 과연 고려의 영역으로 해석해야하는지는 의문입니다. 책봉을 이유로 고려 영토라고 해야한다면, 중국의 책봉을 받아온 3국과 고려 모두 중국 영토가 되는 건 아닐테니까요.

여진에 대한 간접지배를 염두에 두는 것이라고 하셔도 의문인 것이 고구려가 내지에서 말갈을 제어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고려의 책봉 수여가 실질적인 지배의 용도로 사용된 것인지 황제국 체제에 걸맞게 집단 간의 서열만을 따진 것인지는 애매하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인 지배를 당한 것이라면 고려에 책봉을 받은 여진인들이 고려의 뜻대로 고려의 군사력이 되어 대 거란전에 참전해야하지만 오히려 그러했던가요? 그렇다면 이 책봉은 지배의 의미로 해석되어선 안될 것입니다.

그리고 김용만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것은 17만 대군으로 '함흥평야' 라는 2개군 정도의 영역을 정복하기 위해서 17만 대군을 출진시키기에는 낭비다라는 얘기를 하신 것이지 '함경도' 전체란 얘기를 하신 적이 없습니다. 또한 선춘령이 두만강 넘어서 700리에 있다는 세종실록지리지의 경우도 사료로 인용하기에는 문제점이 많다라고 알고 있는데 이 부분은 제가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이 아닌만큼 다음의 글을 소개합니다.

http://orumi.egloos.com/3492039

세종 당시에는 두만강쪽에서 벌어진 명과의 국경분쟁에 대해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야 했던 만큼 이리저리 떠도는 말들 중에서 자신들의 이익에 가장 편승되는 쪽을 지지하고 그에 대한 증거 확보에 나서야 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두만강 넘어 700리에 선춘령이 있다는 내용을 쉽게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두막루 at 2008/08/11 11:56
고려의 강역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일단 제가 읽어본 글은 역사문 고려 토론방의 28번 글 "현재 가르치고 있는 고려의 북방경계선을 재검토해야 한다"입니다. 아마 정확하게 그린다면 한단인님의 말씀이 맞을 겁니다. 제가 제 포스트를 읽어보니 '확실한'이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해당 부분은 수정하겠습니다.
다만, 현재 사회과부도의 중국 영토 그리기 방식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이상한 이중기준이 '표준'으로 되어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저는 동북 9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김선생님 외의 글은 읽어본 바가 없기 때문에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포스트에서 제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고려-조선시대에 국경이 압록강-두만강 라인으로 고정되지 않았다는 정도의 의미였습니다. 우리가 간도를 점유했던 것이 일시적이거나 갑작스런 점령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동북 9성 문제는 저도 앞으로 공부를 더 해야겠죠.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8/08/11 13:51
음..언급하신 글을 쭉 읽어봤는데 몇몇 부분, 특히 고려와 요, 금의 관계에 있어서는 영역 분할의 성격이 대체로 포르투갈과 스페인 간에 식민지 쟁탈전에 대한 교황의 분쟁 중재와 다를게 없어 보입니다.

즉, 일정 지역에서 서로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고 보장하겠다란 의미 해석이 더 강한 듯 싶습니다. 그 지역을 고려가 군현지배나 간접지배를 했다는 증거로 보기에는 근거 좀 미약한 것 같다는..

일단 해당 논문을 보지 못해서 저도 뭐라 말할 게제는 아니긴 하군요.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8/08/11 21:56
참..미주가효님 글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어디있는지 잘 모르겠군요. 어디에 있는 글인지 알려주시겠습니까?
Commented by 두막루 at 2008/08/11 23:17
미주가효님께서 예전 닉네임으로 올리신 글이었습니다.
동아시아 역사 토론장 940번 글 "요청하신, '문화대혁명 때 조선족이 민족주의적으로 차별받은 것들' 자료입니다." 가 있습니다.
Commented by 두막루 at 2008/10/25 12:43
글 내용 일부를 수정합니다. 미주가효님의 지적에 따르면, 전쟁 직후 북한에 가지 않고 남은 조선족들은 국적을 강요당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일방적으로 통보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전쟁 직후 북한에 가지 않고 남은 그들에게 중국 국적을 강요하였다"에서 '강요' -> '일방적으로 통보'로 수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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