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청산에 딴지거는 논리에 대한 비판 둘.

친일파 청산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옛날 얘기인데 뭘 자꾸 들춰내는가?” 이 문제가 옛날이야기라고 생각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친일파 문제는 이미 역사 속의 한 장면이 되었고, 오늘날 “과거사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처리되고 있다.


그러나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역사적 사건은 어떤 것을 막론하고 현재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668년의 고구려 멸망. 지금으로부터 약 1300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사람들이 대개 고구려의 강함을 좋아하는데, 일각에서는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고구려가 강했던 것이 지금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 얼핏 듣기에는 옳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분명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고구려의 멸망은 이후 한국사의 전개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필자는 한국사 최대의 사건이라고 본다). 고구려는 멸망한 반면, 당나라는 명실상부한 세계제국이 되어 자신들의 역사를 숱하게 남김으로써 이후 한-중의 역사 전개는 크게 달라졌다. 이후로 한국이 점차 동아시아의 소국이 되고,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독주하게 되는 것의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고구려의 멸망까지 소급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1000여년 이전의 사건도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친일파와 같은 근대사의 심각한 문제가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은 자명하다.


친일파 문제가 현재까지 거론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사건이 단순히 “근대의 매국매족 행위”로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글 하나를 인용해본다.


---------------------------------------------------

2. 당신들이 일제치하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 일제의 통치가 너무도 가혹해서 할 수 없이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이 분노하는 이유는 단순히 일제하에서 친일했다는 이유가 아니다. 그들도 일제의 통치가 가혹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문제는 친일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친일을 했던 인간들이 친일행위에 대한 일체의 반성이라던가 사과도 없이 그대로 대한민국의 지도층으로 편입되었다는 것이다. 즉 일제하의 친일보다, 해방후의 사과없음이 더 문제가 되는 것이다.

만약 친일 인사들이 '일본놈들이 하도 못살게 굴어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하였소. 이제부터는 그 죄를 뉘우치고 조용히 살터이니 제발 용서하여주시오'라고만 하였어도, 부처님같은 심성을 지닌 우리 국민들은 용서하였을 것이다. 실제로 춘원 이광수의 아들이 '우리 아버지는 폐병환자이니 죄주지 마십시요'하였더니, 순박한 우리 국민들은 '병자를 구박하는 것도 못할 짓이다'하여, 그에 대한 단죄여론을 거둔 바 있다. 그리고 자신이 일본 군대에서 위관급 장교를 지냈다하여, 조용히 근신하다가 주변의 간곡한 설득에 마지못해 건군(建軍)에 참여하였던 이종찬 장군의 예가 있다. 순순히 반민특위에 출두하였던 최남선은 못되더라도, 이종찬 장군처럼 근신은 왜 못하였는가?

(출처 : 다음 카페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의 天狼星主님 글 “친일세력의 물타기 수법 6가지”)

---------------------------------------------------


인용글에서 언급된 사례 외에도, 천도교의 지도자로 친일파가 되었던 최린이 반민특위에 구속된 사람들 가운데 유일하게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단죄해달라고 하여 그 광경을 목격한 국민들이 같이 울음바다가 되었던 일도 있었다.


문제는 최린처럼 자신의 친일 행위를 사죄한 친일파가 아주 극소수였다는 것이다. 인용글에서 언급된 것처럼 한마디 사죄도, 참회도 없이 친일파의 대부분은 대한민국의 각계각층에서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반민족, 반국가적 행위를 일삼았던 자들이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기에 나라의 기강과 근본이 무너질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우리역사문화연구소의 김용만 소장님은 “친일한 것이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고 있으며 독립운동한 것이 죄송스러운 나라에서, 나중에 나라가 다시 위기에 처했을 때 과연 제2의 독립운동에 나설 사람들이 누가 있겠는가”라고 말씀하신바 있다. 이에 대해서 우리는 곱씹어보아야 한다.


국민들은 “과거사 청산”이라는 말의 어감 때문에 이에 무관심한 것 같아 보인다. 필자가 언급했듯이 친일파든 독재정권의 폭거이든 이런 문제들은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금 이 현실의 문제이다. 국민들의 무관심과 “옛날 일인데 뭘 또 끄집어내느냐”는 논리 속에서 “오늘날의 기득권 세력들이 정당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현실 청산”이라는 이름을 제기하고자 한다. 현실을 청산하는 것은 내일과 미래를 위함이다.

p.s 문정창의 친일 문제와 관련해서는 제가 섣불리 언급한 감이 있고, 글 논지에도 별로 중요치 않으니 언급에서 제외하였습니다.(수정 : 최린이나 문정창처럼 최린처럼)

by 두막루 | 2008/07/27 13:38 | 근·현대사 | 트랙백 | 핑백(1) | 덧글(14)

트랙백 주소 : http://bokli.egloos.com/tb/629547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Linked at 잊혀진 한국사, 두막루 : 뭐.. at 2009/02/18 23:22

... <a title="친일파 청산에 딴지거는 논리에 대한 비판 둘." name="629547">친일파 청산에 딴지거는 논리에 대한 비판 둘.</a><a title="친일파 청산에 딴지거는 논리에 대한 비판 둘." name="629547"></a></a>)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두 번째 포스팅도 꼭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단죄해야할 친일파 무리에 대해서 적은 글입니다. 구체적으로 친일파 인사들을 거명하며 다루면 보다 이해가 빠르겠지만, 제 ... more

Commented by Shaw at 2008/09/25 01:32
문정창은 사실 사죄한게 아니죠.
Commented by 두막루 at 2008/09/25 19:08
최린과는 다른 케이스이긴 합니다만, 일단 그가 저서 『군국일본 조선강점 36년사』를 통해 과거 친일 전력을 시인하고 역사 공부를 시작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언급했습니다. 문정창의 학문적 성과와는 별개로 볼 사안이지요. 친일파들 중에는 최소한 문정창 만큼이라도 고백을 하지 않은 자들이 부지기수입니다.
Commented by Shaw at 2008/09/27 17:05
『군국일본...』에서 문정창이 자신의 전력을 시인한 대목이 어디인지요?
Commented by 두막루 at 2008/09/27 20:29
저서를 통해 시인했다는 표현은 제가 잘못 표현했습니다. 허나 그가 자신의 경력을 시인하고 침탈에 대한 비판을 위해서 역사를 공부했다고 변을 한 것은 분명합니다. Shaw님께서 그를 비롯한 재야사가들의 학문적 문제를 부정적으로 보고 계시다는 것은 알지만, 저는 학문상의 문제와는 별개로 그를 언급했습니다.
Commented by Shaw at 2008/09/27 23:28
에... 뭐, 제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 가운데도 이따금 중요한 사실을 망각하시는 경우가 있기에 인식은 하고 있었습니다만, 다소 정리가 안 된 상태로 말씀을 드리자면,

문정창이 만든 문제는 그냥 학문적인 차원- 사료 선택을 잘못 했다거나, 한문실력이 모자라서 좀 해석을 잘못했다거나 하는 차원이 아니라, 아예 "거짓말" 을 한다는 점 까지 포괄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당연히 진술자의 도덕성과 신뢰성 자체가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환단고기와 관련된, 이유립의 신뢰성 문제와 같은 수준입니다.

두막루님께서도 아시겠지만, 문정창이 "친일 시인" 을 했고 "일제 비판" 을 했다는 두가지를 합쳐도 그게 "문정창이 사죄했다" 가 되지는 않습니다. 기껏해야 "최소한 이정도 한 사람은 별로 없지 않느냐..." 가 되는데, 저는 사실 문정창의 일제 비판이라는 것이, "전향" 한 사상범이 자기가 정말 전행했다는걸 보여주기 위해 과도하게 옛 주인을 까대는 행위를 하는 것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친일이나, 전후의 사죄 여부는 공감을 살 수 있어야만 둘다 성립하는 것 같은데, 문정창의 행적을 아는 사람 가운데 과연 몇 명이 그 사람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들을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문정창이 "사죄" 했다는 이야기는 그의 역사연구를 "민족사학" 이라 부르려는 일련의 움직임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꽤 무례한 말씀만 드리고 있습니다만, 문정창 스스로 자신의 전력을 어디에서 시인했는지 대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역사공부를 시작한 계기는 또 어디서 밝혔는지도 같이.
Commented by 두막루 at 2008/09/27 23:52
친일파가 친일 시인, 일제 비판이라는 두가지 행적을 했다면 일단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앞서도 "최린과는 다른 케이스"라고 말씀드린 것처럼, 그가 공개 사죄를 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자신의 삶에 대해 반성했다는 것이 되는 것이니까요.

자신의 전력을 시인한 것에 대한 자료나, 역사 공부를 시작한 계기에 대한 자료는 제가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김선생님, 한단인님 등께 들은 것이라...(이점은 저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허나 본문의 주로 다루고자 한 내용이 아니기에 크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문정창에 대해서는 위 덧글에 말씀드린 수준 이상으로는 잘 모릅니다. 앞으로 제가 문정창의 저서를 읽어보고 그런 케이스에 넣을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문정창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아는 자가 단지 그런 케이스 중의 하나라 생각해서 언급했다는 정도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Commented by 악질식민빠 at 2008/09/28 09:59
문정창은 군국일본 조선강점 36년사 서문에서 비슷한 얘기를 하긴 했는데, 실제로 역사공부(...)를 한 발단은 5·16에 영합하기 위해 자신의 일제시대 발간 서적들을 재발간하며 '군사혁명'을 찬양한 것이 계기죠.

『한국농촌단체사(1961)』 서문 참조.
Commented by Shaw at 2008/09/28 11:07
그러고보니『조선농촌단체사』(소화17)가 원본...
Commented by 두막루 at 2008/09/28 12:23
지적 감사합니다. 그 부분은 앞으로 문정창에 대해 공부할 때를 위해 머릿속에 기억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문정창이 이후로도 박정희 정권에 지속적으로 영합한 것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제가 알기로 5·16 군사정변 후 초기에는 군부 세력에 동조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장준하 선생도 처음에는 『사상계』에서 '혁명'에 동조한다고 하였으나, 이후 박정희 정권의 민정이양 우롱과 한일회담에서 보여준 작태 때문에 반(反) 박정희독재투쟁으로 돌아선 바 있습니다. 문정창이 이러한 케이스와 구별되는지 여부를 엄밀히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Commented by 악질식민빠 at 2008/09/28 13:02
어째서 장준하 선생같은 분과 비교를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정창같은 경우 정치노선을 걷지도 않았고, 66년 이후 관심사를 고대사로 전향하면서 온갖 거짓으로 점철된 고대사를 만든 사람인데요.
게다가 문정창은 73년 『북한』지에 '국사재건의 방법적 서설' 같은 걸 기고한다던가 해서 박정희의 소위 '국사재건'에 영합하는 측면도 있었습니다만.
76년 이후는 『자유』지를 통해서 활동하는데, 이건 더 말할 필요도 없고.

오히려 너무 많이 앞서나가서 박정희 대에는 실현되지 않고, 그 영향을 받은 신군부 대에서야 어느정도 실현된 것으로 보입니다만.
Commented by 두막루 at 2008/09/28 15:24
위에 Shaw님에 대한 덧글에서도 밝혔듯이, 전 문정창이라는 사람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하여 문정창의 케이스가 어떠하냐는 질문을, 장준하 선생의 예를 들어서 해본 것입니다. 님께서는 문정창을 부정적으로 보고 계시다는 것(소위 '비교대상'이 아니다)을 알지만, 문정창에 대해 잘 모르는 제가 다른 인물들과 비교해서 알아보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암튼 답변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악질식민빠 at 2008/09/28 19:59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다면 사족이 되겠습니다만, 결국은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최선이겠지요.

굉장히 무례한 얘기가 되겠습니다만, 두막루님의 문정창에 대한 인상은 김용만 선생님의 '그것'을 답습하고 계신데, 사실 김용만 선생님의 '그것' 도 결국은 소위 재야의 그것을 답습한 것에 불과합니다. (...)

예전에 한단인님 포스팅에서 댓글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만 (http://chiwoo555.egloos.com/1433283) , 정인보나 신채호처럼 오독의 수준이 아니라, 아예 사료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수준의 작자임을 김용만 선생님 같은 분이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은, 저같은 비루한 인간에게 그분의 인식수준에 대해 상당히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과거 민족사학자들은 분명 평가받아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 그들의 주장이 틀린 것으로 판명되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그들이 어떤 논의를 통해 민족사를 정립하고 구축하려했는가는 사학사의 측면, 그리고 민족적인 측면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문정창의 경우는 그들과 분명히 다릅니다. 일단 틀을 정해놓고 현란하게 사료를 나열해서 사람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긴 하는데, 정작 그 사료를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ㅡ 그것조차도 실은 1차인용도 아니지만 ㅡ 아예 거짓으로 인용한 (...) 부분도 상당하기 때문에, 그 '틀' 을 어디서 가져왔느냐도 문제가 됩니다.

덧붙이자면 전 문정창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범죄의 수준에서, 청산의 수준에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두막루 at 2008/09/28 20:47
악질식민빠님/김선생님이 문정창의 문제점을 알아채지 못하신 점에 대해서는 제가 그 분이 아닌 이상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한번 김선생님과 직접 말씀을 나누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제가 예전 역사문 카페에서 소하님 관련 사건이 있었을 때에도 그 분 블로그에 들어가 보니, 한단인님께서 전하시길 "김선생님이 이번 사건과 별개로, 소하님과 학문적 차원의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다"고 하신 것으로 압니다.

저는 역사에 관심을 가진지도 이제 겨우 6년 남짓인데다 초짜 수준이라, 고대사 자체에만 관심을 가진 정도이지 지금으로선 제가 감히 사학사를 논할 수준이 못됩니다(최근 역사철학 저서를 처음 접했다는 이야기로도 충분히 짐작하시겠지만..;;). 아는 정도라곤 김선생님을 비롯한 몇몇 고대사 연구자 분들, 그리고 강만길 선생님을 비롯한 몇몇 근현대사 연구자 분들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여 저같은 초짜배기보다는 김선생님과의 대화가 훨씬 더 유익할 것이라 봅니다. 적어도 님께서 "김선생님이 학자로서의 의무를 해야 한다"고 보신다면, 그 분을 직접 설득해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참고로 이건 현재 논의와는 별개로, 한단인님의 블로그를 보고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역사문 카페가 환빠까지 토론의 대상으로 일단 인정하는 것은 토론에 특정 대상을 무조건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기에, 특정인을 무조건적으로 배타하는 것은 한단인님 스스로 말씀하셨듯 독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적어도 환빠들 가운데에는 토론과 공부를 거쳐서 그에서 벗어나는 사람들도 있으며(저도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토론하면서 그들의 논지는 대부분 논파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별로 환빠적인 글은 올라오지 않고 있으며, 올라오더라도 전혀 환영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한단인님께서 소하님 블로그에도 자세히 덧글로 남겨놓으셨으니 제가 사족을 덧붙이는 꼴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Commented at 2008/09/30 21:29
비공개 덧글입니다.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