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7월 21일
뉴라이트는 어설픈 탈민족주의를 버려라.
계간지 『내일을 여는 역사』 24호(2006년 여름호)의 서두는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시작하고 있다. “신우익과 탈민족의 기묘한 동거, 그 본질은?”
신우익, 즉 뉴라이트는 세계적 현상이다. 그들이 세계화를 위해 탈민족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일견 타당한 주장이다. 그런데 왜 저 계간지의 머릿글에는 뉴라이트와 탈민족주의를 기묘한 동거로 표현한 것일까? 그 이유는 오로지 한국 뉴라이트의 이상한 특성에 있다.
본래 탈민족주의는 민족주의가 지닌다는 배타성, 가부장성 등을 비판하며 민족을 근대 이래 만들어진 상상의 공동체라 주장하는 사조로, 국내에서는 한양대 임지현 교수가 대표적인 탈민족주의 사학자이다. 탈민족주의의 제기와 관련하여서는 동아일보 2006년 3월 4일자의 기사 “민족주의 VS 탈민족주의 논쟁”에서도 소개된 바 있다.
저 기사에는 임지현 교수 외에도 3명의 연구자가 더 소개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이영훈 교수와 박지향 교수는 바로 뉴라이트의 대표적 저작인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의 저자들이기도 하다. 책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해방 이전인 일제강점기로부터 이후 이승만 정권기에 이르는 기간에 대해서 다룬 책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왜 그들은 탈민족주의를 이 시기, 즉 근·현대사(흔히 ‘과거사’라고 부르는)에만 적용하는가? 그들의 저작이 대체적으로 이 시기만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필자의 이러한 비판이 옳지 못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희한하게도 현실에서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잡아야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란 일종의 민족 내지 국가 논리(공동체 논리)가 아니던가? 탈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어째서 현실에서는 이런 주장을 펴고 있을까? 그들은 분명 기존 사학의 민족주의적 해석을 극복하는 것도 목표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다.
참고로 임지현 교수는 탈민족주의를 특정 시대에만 적용하지는 않는다.
두 번째 문제. 뉴라이트는 이상하게도 근·현대사에 탈민족주의를 적용하면서도, 여전히 국가주의 논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대안교과서가 출판된 이후 탈민족주의의 주도자인 임지현 교수도 비판한 바 있다. 임지현 교수는 탈민족주의 관점을 일관되게 견지하여 국사(國史)라는 틀을 벗어날 것을 주장해왔는데, 뉴라이트 사학은 오히려 국가주의의 울타리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필자는 임지현 교수의 탈민족주의, 국사해체론을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임지현 교수는 최소한 자신의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결국 역사 해석을 이상한 방향으로 하여 잘못된 결론을 도출하는 결과를 빚고 만다. 2가지 예를 들겠다.
1. 김구와 이승만에 대한 이상한 상반된 평가.
대안교과서에서 가장 두드러진 평가 가운데 하나랄 수 있는 부분이다.
뉴라이트는 여기에서 이승만의 대한민국 건국을 “공산주의 국제세력의 공세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어하고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기틀을 잡는 데 어느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커다란 공훈을 세웠다”고 하여 긍정적으로 높이 평가한 반면, 김구에 대해서는 남북협상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하였으며 교섭 실패 이후에는 “대한민국의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이는 역사를 정말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라면 거꾸로 평가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백범 김구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고수하는 것도 팽개친 채 남북협상에 임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바로 분단국가 수립을 어떻게든 막고 오로지 통일국가, 하나된 민족국가의 수립을 달성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그런 김구가 남북한 어느 쪽에도 참여하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학계에서는 통일사관의 관점에서 김구를 높이 평가해왔다.
일례로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의 『대한민국史』 1권에서는 당시 김구가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심정에 대해 자세하게 기술되어있으며(39p),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며 임시정부를 유지해온 김구에게 통일정부가 아닌 반쪼가리 정부는 하나가 아니라 열 개, 백 개를 세워도 임시정부의 법통을 물려줄 수 없고, 정통성을 인정할 수 없는 그런 집단일 뿐이었다“(40p)고 하여 김구의 단독정부 수립 반대가 갖는 역사적 의의를 높게 평가하였다.
김구는 단독정부 수립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인데, 뉴라이트 사학자들은 같은 사건을 두고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다”라고 하여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독자분들께서는 납득이 되시는가?
탈민족주의를 주장하면서 국가주의를 유지하는 이상한 기준 때문에, 백범 김구는 애매하게 평가절하당한 반면, 우남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은 높이 평가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는 국가가 세워지기도 전이었으므로 국가주의를 적용하는 것은 부당한 것이다. 굳이 적용하려면 국가주의와 친화적인 민족주의 관점을 적용할 수 있는데, 이에 따르면 이승만의 분단국가 수립은 부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뉴라이트의 기준, 놀랍지 않은가? 똑같은 사건을 보고도 김구와 이승만에 대해 이렇게 학계와 정 반대의 평가를 내리는 당신들은 에리뜨!
2. 탈민족 관점과 국가주의적 논리로 이승만 정권을 재조명(?)하다.
1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안교과서에서는 이승만의 건국은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다.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건국이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승만 정권의 반민특위 해산이나 반이승만 독재투쟁에 대한 탄압 등 심각한 잘못들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대안교과서는 “이승만 대통령을 위시한 우파 집권세력은 좌파 공산주의자들이 끊임없이 체제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친일파 청산보다 내부 단결과 반공태세가 더 급하다고 생각하였다.(145p)"고 서술하고 있다. 과연 친일파 청산을 미룬 것이 정당한 행위였는가?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아도, 친일파들은 반역자들이 분명하다. 1910년 나라를 빼앗긴 이래 1948년 국가가 세워지기 이전까지 친일파들이 벌인 행각은 반(反) 국가적 행위였는데 어째서 이들을 청산하지 않은 것을 비판하지 않는가? 빨갱이만 반 국가 분자인가?(누구의 반 국가 역사가 더 긴데?)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승만 정권은 긍정적 평가보다는 부정적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위의 교과서 서술에서는 이승만 정권을 위협하는 세력들을 좌파 공산주의자로 규정하고 있지만, 공산주의자들만 있었던 것은 분명히 아니다. 유학자 독립운동가로서 김구와 같은 노선을 걸었던 심산 김창숙의 반이승만 독재투쟁은 그의 위상에 걸맞게 영향력이 지대한 사건이었으며, 철저한 자유민주주의자였던 장준하 역시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항하여 4·19 혁명이 일어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독재정권에 대항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던 사람들의 노력을 언급하지 않고, 이승만 정권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올바른 역사 인식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국가를 세운 것에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승만 정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김구를 깎아내린다거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반독재 투쟁을 벌인 사람들의 노력을 배제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게다가 한마디 덧붙여, 역대 독재정권들은 민족 중흥 등 나름대로 민족주의의 명분을 내걸고 정권을 유지하였는데, 이들을 탈민족주의의 관점으로 재조명한다는 것은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위의 문제들을 종합하여 보면, 뉴라이트 사학자들이 과거사에 탈민족주의를 적용하고 그러는 와중에도 국가주의 논리를 유지하는 것은 역사 인식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친일파, 단독정부(분단국가) 수립, 분단정권의 독재 강화 등 민족적 평가가 필요한 근·현대사에 대해 오히려 탈민족을 적용하려고 드는 것은, 이러한 과거 문제를 안고 있는 우파로 하여금 면죄부를 부여하려는 발상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뉴라이트는 차라리 국가주의 논리나 기존 우파(한나라당, 조중동 등)와 결별하고 철저히 뉴라이트답게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지켜라. 아니면, 굳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운운하면서 한나라당이나 조중동 등과 한 배를 타고 싶다면 어설픈 탈민족주의를 버려라.
뉴라이트에겐 후자의 길이 현실적이겠지만, 이는 결국 서구로부터 뉴라이트라는 간판을 빌려온 구 우파에 불과했다는 것을 시인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p.s 1 참고로 임지현, 박노자 등의 탈민족주의자들은 가부장제, 민족주의의 억압성 등을 비판하는 진보적 논리를 펴는데 반해(필자는 탈민족을 진보로 생각지는 않지만, 일단 그들이 현재 진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같은 탈민족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뉴라이트 사학자들은 극우적 인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내일을 여는 역사』에 신우익과 탈민족의 기묘한 동거라 표현된 까닭이다.
p.s 2 이번으로 적어도 뉴라이트에 대한 비판이 3번째로군요. 순간 떠오르는 주제(흔히 삘feel 받았다고 하는...)에 따라 글을 쓰는 적도 있기 때문에, 우연히 이렇게 되었습니다. 뉴라이트 비판을 위한 목적으로 블로그를 만든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이를 끝으로 별로 비판할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제 자신이 근·현대사 전공자가 아닌 까닭에 비판할 능력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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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7/21 11:06 | 근·현대사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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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군님께서 올려주실 흑룡회 관련 자료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ㅎㅎ
""뉴라이트는 차라리 국가주의 논리나 기존 우파(한나라당, 조중동 등)와 결별하고 철저히 뉴라이트답게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지켜라. 아니면, 굳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운운하면서 한나라당이나 조중동 등과 한 배를 타고 싶다면 어설픈 탈민족주의를 버려라.
뉴라이트에겐 후자의 길이 현실적이겠지만, 이는 결국 서구로부터 뉴라이트라는 간판을 빌려온 구 우파에 불과했다는 것을 시인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이 부분을 주제로 또다른 좋은 글한편 기대해도 되려는지??
뉴라이트 구성원들은 대개 70년대 80년대 주사파나 학생운동 하던 사람들이었숩니다.
뉴라이트라고 하는 자들은 본인들도 자인했다라고 한다지만 기실 그들은 주사파나 민중민주파에서 전향한 사람들입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주사파나 민중민주파였던 사람들이 감히 자기네 주사파나 민중민주파를 혁신하기나 할것이지 감히 우파를 혁신하겠다라고 어디서 나타나서 설레발이를 떠는 것부터가 우스운 일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뉴라이트 계열(포괄적 의미)이 항상 극에서 극으로 달려간 사람들인지라 이미 그 시절부터 비정상이었다고 보면 정확합니다.
사실 안병직, 이영훈 교수가 있는 뉴라이트 재단(뉴라이트 사학 정도로 칭할 수 있겠죠)은 경제사학적 방법을 통해서 역사를 해석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전문적으로 비판하려면 거기서부터 접근해야 합니다. 뉴라이트 관련 글을 올리면서 다른 분들의 포스트를 읽어보았는데, 그 가운데 경제사적 문제에 대해 자세히 정리되어있는 글을 보았습니다. 아마 그 정도까지 연구해야 할겁니다.
그러나 제가 실력이 굉장히 미숙한데다가 근·현대사 전공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은 까닭에 이 부분은 다른 연구자 분들께서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실력 부족인 상황에서의 비판인 줄 알지만은 그래도 첫번째 말씀하신 덧글을 언급해보았습니다.
물론 경제사적 측면 외에 그들이 역사 해석의 기준으로서 차용한 탈민족주의 등이 얼마나 엉성한 것인지는 굳이 경제사를 공부하지 않아도 언급할 수 있으므로 올린 글이기는 합니다. ㅎㅎ
하여 현재로서는 이 이상 뉴라이트에 대한 비판은 좀 어려울듯 합니다. 혹시나 비(非) 경제사적 문제가 또 발견이 된다면 포스팅할 의향은 있습니다.
뉴라이트는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의 관점에 입각했다기보다는, 자본주의의 관점에 입각해 있다고 보는게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요? 그들이 '탈민족'을 주장하면서 일제시대를 찬양하면서도, '국가 정통성'을 내세워서 소위 '빨갱이'들로부터 나라를 지켰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니까요. 일제시대는 그들이 말하기로 자본주의를 한국 땅에 이식한 시대이고, 분단 이후 시대 역시 그들이 말하기로 한국 자본주의가 꽃핀 시대니까요.
맞습니다. 뉴라이트의 일관된 핵심적 가치는 자본주의이겠지요. 다만 제가 지적하는 것은 부차적으로 뉴라이트에서 탈민족을 주장하다가도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 국가주의 내지 민족주의를 차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만약 그들이 세계 신자유주의적 가치에 따라서 주장을 하려면 이승만, 박정희 정권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같은 우파에 속한다고 해도 신자유주의는 과거 우파와 상당히 다르니까요. 일례로 신자유주의는 말 그대로 '자유주의'를 최상으로 여기기 때문에 어떠한 국가적 개입, 수정 자본주의 같은 것을 반대하는 입장인데, 과거 박정희 정권의 경제 발전은 자유주의나 경제학적 전통의 우파 고전주의와는 정 반대였던 공산주의 식의 계획경제적 측면이 강했습니다. 신자유주의 우파의 입장에서는 박정희 정권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이며, 지극히 정상일 것입니다.
아마 외국인 신자유주의자가 본다면 분명 그러할 것인데, 문제는 우리나라의 뉴라이트 같은 세력들이 일관된 잣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그들이 현 정치권의 우파들과 무관하지 않은 것과도 관련이 있겠지요. 만약 그들이 순수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중시한다면, 별도의 주장을 내세워 정치권의 우파들과 스스로 차별화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