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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다른 명칭들 中 - <<샤나메>>에 나온 '모크란'은 과연 고구려인가? 역사

역사 관련 글은 쓰지 않은 지도 오래되었지만(솔직히 소재가 없어서는 결코 아니고, 오히려 쓸 소재는 착실히 쌓아두고 있지만 장차 책으로 내고 싶은지라 일부러 안 쓰는 것에 가까운 것이 사실...), 요즘 관심을 갖고 찾아보다가 알게 된 이야기라, 정말 오랜만에 한 바닥 남겨본다.

 

근래 들어 이란(페르시아)이나 그리스 등의 역사와 서사시 쪽에 관심을 갖고 보다가 예전부터 이름만 들어온 <<샤나메>>(이란의 대표적 서사시 작품)를 본격적으로 찾아보게 됐다. 국내에 번역본이 딱 한 권 있어 구입했는데, 중세 페르시아어를 직역한 것이 아니라(이 정도 되려면 이란 전문가나 가능하겠지만) 영역본을 중역(重譯)한 것이고 그 영역본도 전문이 아닌 축약본이라는 점이 조금 아쉽긴 하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그보다 몇 년 전 이미 구입했던 <<쿠쉬나메>>(이희수 선생 역)가 떠올랐고, 실제로 두 문헌은 접점이 많아 함께 분석해야할 책이었다. <<쿠쉬나메>>가 나름 유명했던 이유가, 거기에 우리 고대국가 신라가 바실라라는 이름으로 거론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 작품에서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는 주요 공간으로 나올 정도다.

 

그러다 문득 나무위키 고구려 항목에서 외국에서 부른 고구려의 다른 명칭들 가운데 모크란(Mokraan)’이 있다는 내용이 기억났다. 출전이 다름 아닌 <<샤나메>>로 되어 있다 보니, 고구려사 전공자인 나로서는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어 당장 구글에서 검색하여 여럿 찾아보았다.

 

내가 옛날에 오래 활동했던 다음 역사문 카페에 올라온 글과 다른 다음카페 글이 맨 먼저 뜨는데, 역사문 글(2011)이 시기상 가장 이른 것으로 보아 아마도 모크란=고구려 주장의 출처가 아닐까 싶다.

https://cafe.daum.net/alhc/51qG/2706

 

이미 언급하였듯이 <<샤나메>>는 축약본이 많아, 관련 대목들을 찾아 비교해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샤나메>>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특성상 영문 위키백과 등의 설명이나마 참고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인명이나 지명 등의 영역 발음 표기가 통일된 것도 아니라는 점도 감안해야한다. 그래서 저 모크란을 찾아보니, 국내 번역본의 출전인 헬렌 짐머른 영역본에서는 미크란(Mikran)’으로 되어 있고, 이 나라(해당 작품에서 왕도 등장하니 나라로 보는 것이 맞을 게다)가 거론되는 대목이 부분부분 나오는데, 각기 영역본들이 모두 축약본인 까닭에 서로 대조해보기가 어려웠다.

 

https://www.iranchamber.com/literature/shahnameh/shahnameh.php

- 헬렌 짐머른 역. 여기에는 07- Kai Kawous Committeth More Follies에만 미크란(Mikran)’으로 딱 1번 나옴

 

https://en.wikisource.org/wiki/Shah_Nameh

https://books.google.co.kr/books?id=HKUOPoJEirwC&pg=PA331&lpg=PA331&dq=shahnameh+mikran&source=bl&ots=9VhJuLaOwr&sig=ACfU3U3_QllRjmfUJgtR0yPTuXItJqVm1g&hl=ko&sa=X&ved=2ahUKEwj28Kmn9Yr0AhXhh1YBHX7LD5oQ6AF6BAgaEAM#v=onepage&q=mikran&f=false

- 제임스 앗킨슨 역. 여기에서는 The Heft-Khan; or, Seven Labors of RustemThe Death of Afrásiyáb의 두 대목에 역시 미크란(Mikran)’으로 나온다.

 

그렇지만 두 영역 축약본은 사산왕조 이란제국이 이슬람 아랍세력에게 멸망하는 시점까지 다루지 않고 있고, 그나마 다루는 내용도 전문이 아닌 것으로 보여서, 결국 전문 영역본을 찾아보기로 했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저 역사문 글에서 다룬 핵심 내용인, “이란의 전설적 영웅 카이 코스로(호스로)가 중국 너머 모크란을 정복하고 거기서 일출을 보았다는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구글에서 전문 영역본(딕 데이비스 역)이 올라온 사이트를 찾을 수 있었다.

https://archive.org/details/shahnameh-the-persian-book-of-kings/page/n211/mode/2up

여기에서 관련 대목들을 이 잡듯 뒤져보니, 이 책에서는 모크란을 마크란(Makran)’으로 표기하였다. 10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인지라 다 뒤져볼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하여, 뒤에 색인이 있을까 확인해봤는데 아쉽게도 색인은 없었지만 작품의 주요 인명, 지명 등을 짤막히 설명한 부록이 있었다. 그 중에 이 마크란(Makran)’이 나오는데, 웬걸! 설명은 내가 원했던 고구려가 전혀 아니었다.

 

MAKRAN : southern Afghanistan and the south of what is now Pakistan.(1006)

 

아프가니스탄 남부와 그 남쪽인 파키스탄 서부 영토 지역을 가리킨다고? 이 정보가 정확한 것인지 궁금해서 구글에 다시 ‘shahnameh makran’으로 검색해봤다. ‘마크란(Makran)’을 이 지역으로 설명하는 내용들이 더 있었다.

 

해당 지역은 오늘날 발루치스탄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발루치족이라는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실제로 이들의 역사를 소개하는 내용 중에 마크란(Makran)’, ‘마크란 해변(Makran coast)’이 언급되고 있다.

https://www.sahapedia.org/sistan-and-balochistan-province-fringe-empires

https://steemkr.com/history/@yelmaz/who-are-the-baloch-a-historical-summary-5200f68517724

 

이쯤 되니 아무래도 모크란(마크란, 미크란)’을 고구려로 보는 것은 잘못된 정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생각해보면 고구려의 다른 명칭의 대표격인 뵈클리(Bokli-내 블로그 주소에 넣기도 했던 그 이름 ㅎㅎ)’는 본래 돌궐(괵 투르크) 2제국 시기의 두 비문에 나오는 것으로, 비문 자체의 내용(당나라=타브가치의 뵈클리 공격에 돌궐도 참전했다)도 그렇고 이와 비슷한 <<범어잡명>>무구리=고구려기록을 통해서도 교차검증까지 가능한, 확실한 이름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뵈클리=무구리=무크리(동로마 역사가 시모카테스 기록)’와 비교해보면 모크란은 그 명칭의 뒷부분이 확연히 달라, 같은 어원의 단어로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싶다.

 

아마 역사문 카페 글의 출전이 된 Fereydun Joneydi라는 교수(이름을 보면 아마 이란인인듯)모크란을 고구려로 잘못 비정한 것 같은데, 국수주의적 관점에서 일부러 그리 주장했는지(근데 <<샤나메>> 자체가 엄밀한 역사서가 아니라 설화적 서사시이므로 설령 고구려가 맞을지라도 당근 실제 정복일 수도 없다), 암튼 정확히는 모르겠다.


기대감을 갖고 찾아보고는 아닌 것 같아 실망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정확한 정보를 알게 된 것을 다행이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정확한 정보를 알기 위해서는 이렇게 집요하게 찾아봐야한다는 것도 새삼 절실히 느꼈다.



뱀발. 지도 첨부가 안 되어서, 혹시 확인하고 싶은 분은 다음 링크를 참고하시길.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역사문) | 고구려의 다른 명칭들 中 - <<샤나메>>에 나온 모크란은 과연 고구려인가? - Daum 카페


덧글

  • 두막루 2021/11/09 21:47 # 답글

    지도 그림도 첨부하려고 했는데, 이글루스가 맛탱이가 갔는지 자꾸 안 된다. 심지어 자꾸 로그인도 풀려버리는데, 정말 가지가지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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