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 말기에 일본군에 편입되면 잠재적 친일파인가?

그제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서 김 추기경의 관련 글들(이글루스 포스팅)을 좀 보고 있었는데, 하나 눈에 띄는게 있더군요. 일본군 경력에 대한 문제. 연합뉴스에서 그 사진을 올려놓은 것이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았는데, 꽤 오래된 떡밥 이야기였습니다. (한 마디로 뒷북...;;)
그런데 이 문제를 놓고 그 블로그에서 논쟁이 일어났는데, 어떤 특이한 덧글을 보았습니다.

"직접 해외로 나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지 않고 국내에 남아 있었던 것은 일제 통치에 대한 순응이며, 이는 곧 잠재적 친일이다"

... 글쎄요.
이 분은 너무 말씀을 쉽게 하고 계십니다. 그 분한테 도로 묻고 싶습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직접 실천할 의지는 있냐고.

우선 유명한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좀 언급하면(이건 일반인들 차원의 얘기가 아님), 춘원 이광수가 1920년대 초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했다가 망명 독립운동가라는 처지에 회의를 느끼고 국내로 들어와 민족개조론 제기, 친일 등으로 전락한 사례가 있기는 합니다. 물론 그가 적극적 친일을 한 것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해외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한다는게 그렇게 쉬운 일일까요?

일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부주석이자 해방 이후 좌우합작운동, 남북협상 등을 주도했던 우사 김규식은 고아 출신이었고, 병약한 몸에다가 비(非) 정치적 기질의 사람이었다고 알려졌는데도 그는 망명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는 일단 그것 하나만으로도 굉장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즉 해외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것은 의무이거나 당연한 일인 것이 아니라, 아무나 택하기 어려운 고된 일 그렇기에 대단히 훌륭한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독립운동가들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고요.

당대 지식인이었던 이광수가 현실을 외면하고 귀국하여 일개인으로서만 조용히 살아갔다면 그 자체로도 어느 정도 비난받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 강도는 친일파와는 분명히 달라야 합니다(물론 가정입니다만). 하물며 일반인들이 그렇게 산 것이 과연 죄일까요?

'침묵이나 중립이 잠재적 동의'라는 말은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국내의 일반인들이 일제에 항거하지 못했다고 단순히 잠재적 친일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모두 뛰어들 만큼 그렇게 형편이 좋은 것도 아니었고, 해방 이후 독재정권에 항거할 때에도 말 그대로 전부 다 들고 일어난게 아닌 것처럼 이 문제도 한 발짝 물러서서 봐야 합니다.

저도 친일파 무척 싫어하고 독립운동가들을 존경합니다만, '제가 그 시대 환경에 놓여 있었다면'이라는 가정을 해봅니다. 과연 나는 독립운동에 투신할 자신이 있는가. 소시민으로서 조용히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죄가 되어서는 안 되지요. 당시에는 독립이 정말 누가 뛰어들면 곧바로 실현되는 그런 것도 아니었고, 일제의 지배가 영원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런 점에서 친일파 논의도 좀 나누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주제에서 벗어나고 저는 근현대사 전문가가 아닌 고로 패스~)

제 첫 포스팅에서도 언급하였듯(친일파 청산에 딴지거는 논리에 대한 비판 하나.),
당시 국내에 있었던, 그래서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군에 편입된 사람들을 전부 친일파로 몬다면 도리어 진성 친일파들을 옹호하는 논리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인들은 전부 친일파였는데, 누구를 욕할꺼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이렇게 지껄이는 인간들도 있고.


p.s 이건 뭐 이상하게 밑에 공백이 뜨고, 첫 포스팅에 대한 링크도 안 되고... 썩을 이글루스여.
혹여 불편하시더라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어떻게 이걸 손질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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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막루 | 2009/02/18 10:25 | 근·현대사 | 트랙백 | 덧글(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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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2/18 11:04
심원한 문제를 잘 지적하셨습니다. 사실 이 사안은 '친일' 개념의 무망함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요즘 한국사학계 일각에서는 '협력' 개념의 도입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고, 기존의 친일 개념에 입각한 '친일청산' 을 비판하는 소수자들이 있습니다.
Commented by 두막루 at 2009/02/18 22:15
저는 본문 마지막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친일 개념이 무망하다는 표현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만, 친일을 다양한 유형으로 나누어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다 같이 친일파라고 뭉뚱그려지는 사람들 중에는 구명될 만한 인물들도 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누차 강조하지만, 저는 이를 통해 진성 친일파들이 물타기되는 것을 절대 바라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런 논쟁이 일면 아예 확실하게 못을 박아야 한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2/19 08:22
협력 개념이 그런 접근에는 더 유용하다고 보는 겁니다. 친일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오염되었다고 보는지라.
Commented by 두막루 at 2009/02/19 10:13
저... 그러니까, 협력 개념과 친일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시는지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차이점이 있으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겠죠.
전문 연구자들 가운데에는 '친일파'라는 용어보다는 '부일협력자' 같은 용어를 선호해야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는 점은 알고 있습니다. 이 경우는 제가 보기엔 이것은 좀 더 적합한 용어를 쓰기 위한 것인 정도이지, 그 뜻 자체가 달라서라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2/19 10:37
그렇게 단순히 단어만 바꾸면 될 정도면 아예 바꾸자고 하지도 않았지요.
Commented by Esperos at 2009/02/18 11:40
저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독립운동에 투신하면 자기는 물론 집안도 말아먹을 각오를 해야 하는데, 거기에 투신함은 어지간한 용기와 의지 가지고는 안 되겠지요. 모든 사람이 그만한 용기와 의지를 지니리라 생각하기 어렵죠. 아니, 대다수 사람이 그만한 용기와 의지를 지니지 못합니다. 그런 상황이 정상이죠.

저는 예전에 서정주 시인이 운명했을 때에도 친일파 논란이 인터넷상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값싼 정의"라고 생각했습니다.
Commented by 베른카스텔 at 2009/02/18 13:38
서정주는 친일 맞지 않나요 ㅡㅡ 제가 잘못알고 있는 건가.
위대한 일본군 오장 어쩌고 운운하면서 시 걸쭉하게 쓰신 양반으로 아는데

그건 불합리한 체제 속에서 희생당한 시대의 피해자...같은 맥락으로 이해될 수 없는 개념 없는 짓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Commented by 쯔쯧 at 2009/02/18 14:01
서정주 친일파 맞는데 무슨 개솔ㅋㅋ
Commented by rumic71 at 2009/02/18 14:15
서정주는 친일보다 전두환 찬양한 게 문제죠.
Commented by Esperos at 2009/02/18 14:33
시 몇 개 쓴 정도 친일은 친일 정도로 치지도 않소. 조선인에게 실제로 피해준 게 있나요?
Commented by 베른카스텔 at 2009/02/18 14:47
시인과, 시인이 존재하는 사회에 있어, 특정 정치적 의견에 기반한 시는 결코 '몇 개' 정도 일 수가 없습니다. 단순한 수량이 중요한 게 아니고, 그 시가 발표된 상황과, 그 시가 본질적으로 의도하는 바가 어떤가가 중요하죠. 그건 궤변입니다.
게다가, 실체적인 피해를 조선인들에게 주었느냐 안 주었느냐는 친일로서 발생하는 영향일 뿐이지, 친일 그 자체의 고의성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Commented by Esperos at 2009/02/18 14:47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이들이 시 몇 줄 읽고 천황폐하의 신민으로서 영광스럽게 전투에 나서자 할 것 같나요? 일본에서마저도 군대 안 가고 싶어서 빼는데. 승승장구하던 전쟁 초라면 모를까. 일제도 실제적인 압박수단 없인 병사 못 모았어요.
Commented by 베른카스텔 at 2009/02/18 14:49
그러니까, 그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이들이 시 몇 줄 읽고 전투에 나섰을까 아니었을까는, 어디까지나 의도의 결과죠.
지금 제가 따져 묻는 것은 의도의 결과가 아니라, 의도라는 겁니다.
Commented by Esperos at 2009/02/18 14:52
서정주 시인이 "내가 이렇게 시를 썼으니까 젊은이들이 천황폐하의 군대로서 사쿠라처럼 옥쇄하겠지"라는 의도를 가졌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군요. 차라리 '이런 시를 썼으니까 불량분자라고 괴롭히진 않겠지'라고 보신했다는 데 더 눈이 가는데요?
Commented by 베른카스텔 at 2009/02/18 14:55
아니, 제가 말하는 서정주의 의도는 그런 거랑 다릅니다.
Commented by Esperos at 2009/02/18 14:57
그러면, 도대체 그 서정주의 '비난받아 마땅한' 의도라는 게 도대체 뭡니까?
Commented by 베른카스텔 at 2009/02/18 14:58
그 당시 공고한 절대 우위에 있던 지배 체제에 편승하여, 떡고물이나 챙겨먹자는 심보겠죠. 물론 서정주가 대단한 친일파라서 일본의 대동아 공영권을 위해 징집을 유도하기 위해 그런 시를 썼다고 보진 않아요. 서정주는 자신의 철학적 주관 없이 이랬다 저랬다 강자에게 붙어먹는 모리배거든요. 그런 자가 철학 따위가 있어서 일제를 찬양했을 리가 없죠. 사실 서정주는 친일파라기보다는 기회주의자가 더 걸맞긴 합니다. '불량분자라고 괴롭히지 않겠지'라는 의도였다면 차라리 절필을 해야죠?

원래 사람 잡아다가 두들겨 팬 것도 죄악이지만 본질적으로 악의 성질을 띤 체제를 옹호하고 합리화하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전자의 경우는 주변의 몇 사람에게만 악을 행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사상과 문학적인 감수성으로서 군중의 의식과 욕망을 움직여, 마침내 수백 수천에게 알게 모르게 나쁜 영향을 줍니다. 전자보다 후자가 엄청난 악질입니다.

서정주 정도 되는 시인이 친일 성향의 시를 발표한다는 것 자체가, 사상의 시장에서 엄청난 권위를 발휘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실제로 그 시를 읽고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갔느냐 안 갔느냐는 지금 현대에 있는 우리들이 짐작할 수도 없어요.
Commented by 베른카스텔 at 2009/02/18 15:00
물론, 서정주 자신이 일제에 대한 철학이 없는 기회주의적 모리배이기 때문에 진정성을 가지고서 일제를 찬양하는 시를 썼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사회에서 친일이라는 의미가 널리 쓰이는 바가, 진정성을 가지고서 일제에 붙어먹은 놈+아무런 주관도 없이 이랬다 저랬다 강자로서의 일본에 붙어먹는 놈 모두를 아울러 표현하는 바임을 생각한다면

서정주는 엄밀한 의미로는 기회주의자
대중적인 의미로는 친일파 맞죠.
Commented by Esperos at 2009/02/18 15:05
일본 본토에서마저도 입에 발린 화려한 문구로는 징집병을 모을 수가 없었어요. 조선인이 그런 시 좀 썼다고 사상의 시장에서 엄청난 권위를 발휘한다? 전쟁 전이라면 그랬을 수도 있지만, 당장 병력이 부족해서 징병하려는데 이것 저것 강제적인 수단을 동원하고, 그 징병 피하려는 사람이 부지기수인 마당에 젊은이들로부터 욕을 먹으면 먹지 사상의 시장에 권위 운운하기엔 기가 막히죠. 제아무리 화려한 말빨도 실제적인 피해 앞에서는 맥을 못 춥니다. 불량분자라고 괴롭힘받지 않으려면 절필하라? 그럼 먹고 사는 문제도 걱정해야 하고, 절필 자체가 반항으로 보일 수도 있어요.
Commented by Esperos at 2009/02/18 15:08
그런 식의 '기회주의자'라면 조선에서 부지기수로 많았습니다. 일제조직 아래서의 공무원, 일본대학 유학자, 식민지 조선의 사업가.... 그 모두를 친일파라 할 생각인가요?
Commented by 베른카스텔 at 2009/02/18 15:15
기회주의적 편승도 아니고, 진정성을 띤 찬양도 아니고, 단지 생존하기 위한 불가피한 방법이었다는 가정이 옳다면, 소극적 저항으로서 정치색을 퇴색시켰어야 했습니다만, 그는 오히려 적극적인 찬양을 택했습니다. 일본군 오장 운운하는 시는 아무리 읽어봐도 쓰기 싫은데 억지로 쓰는 시가 아닙니다. 또한, 그러한 가정이 옳다면 일제 시대와 같이 인권이 극도로 박탈되어 있는 극한 상황이 아닌, 전두환 독재 정권 시절(일제보다는 상대적으로 조금 낫다는 뜻입니다)에 전두환 민족 영웅 운운한 것도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시도였다는 변명이 되어 버립니다. 말이 됩니까? 일제시대야 말 안 들으면 쳐 죽인다는 시대니까 그렇다 칩시다. 후자는 뭡니까. 전두환 시대에도 '민족의 영웅 전두환 운운'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자기가 쓰고 싶지 않은 시인데도 억지로 쓰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생계가 궁핍했습니까? 아니잖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의 코드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만약에, 일제 시대에 그러한 시를 썼다는 것 자체만 진실로서 존재한다면, 관대하게 서정주는 먹고 살기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 했다고 봐줄수도 있겠죠. 하지만 뒤에 따라오는 전두환 민족 영웅 운운 때문에 그렇게 봐줄 수가 없습니다.
Commented by 베른카스텔 at 2009/02/18 15:17
ES님이 언급하시는 일제 시대 사회에 널렸던 생존을 위한 기회주의자들과, 서정주 같이 오랜 세월 여러 권력을 거쳐 오면서 그때마다 일관되게 강자에게 편승하고 잘못된 논리를 합리화했던 전력이 있는 권력 지향형 기회주의자를 동일시 할 수는 없습니다.

전자보다 후자가 악질입니다.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2/18 15:18
일본 지배하에 사는 것 자체가 구조적 협력을 강제받는 상황입니다. 출구는 없지요. 그런 딜레마를 감안하고 당대인들의 행동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친일행위의 범주가 넓어져만 가는 건 그런 과거의 상이한 조건을 이해하지 않으려는 자세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Commented by 베른카스텔 at 2009/02/18 15:20
시인의 시가 사상의 시장에서 권위를 가지지 않기에 간접적인 파급 효과가 없다면, 일제가 당연히 그따위 하찮은 시인에게 협박을 할 리가 없죠. 당장 먹고 사는 것이 징병에 유리하지만, 본질적으로 사람을 바꾸는 것은 의식입니다. 그리고 그 의식을 건드리는 게 시와 주장이고요.
시가 쓸모 없을 것 같죠?
하지만 시인에게 협박 했잖습니까? 쓸데 없는 짓을 할 바보 같은 권력은 없죠. 권력은 시의 힘을 알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Esperos at 2009/02/18 15:21
당시에 정치색을 퇴색하여 썼다는 건 후대의 바람일 뿐, 기왕 쓴다면 눈 딱 감고 입술에 침이라도 바른듯 써야 한다고 할 수 있어요. 일개 시인에게 무슨 거창한 사회적 의의를 부여합니까? 전두환 찬양 시는 제가 봐도 알아서 기었다 싶어서 변호할 생각이 없지만 친일파라고, 우리나라에서는 빨갱이란 말만큼이나 효과 좋은 마법의 죄목을 붙일 순 없습니다. 그건 부당해요.
Commented by 베른카스텔 at 2009/02/18 15:22
ghistory /그러니까 그 일제의 특수한 구조적 상황 하에서의 개인이 택할 수 있는 선택권 정도는 이해하고, 먹고 살기 위한 기회주의 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쳐도,

그 특수한 구조한 구조가 사라지고,

형식적으로나마 개인의 인권을 명시한 공화국 시대에서마저도 그러한 기회주의를 서중주는 한 번도 아니고 여러번씩이나 더 보였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거죠. 이 정도면 생존을 위한 기회주의자일 수는 없다는 겁니다.
Commented by Esperos at 2009/02/18 15:23
권력이 시의 힘을 안다고요? 그건 권력자 개인의 허영심일 뿐, 실제로 무슨 힘을 발휘하냐고 물으면 답은 부정적이지요.
Commented by 베른카스텔 at 2009/02/18 15:26
일제 시대는 권력자 하나로 돌아가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명목 뿐인 천황 아래 조선 총독부를 위시한 사회 시스템이 조선을 지배했죠. 시와 사상은 단순한 허영심 따위가 아닙니다. 의식을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민족 선언 일원인 최린이 일제 시대에 협력해 강연을 하면서 징집 독려를 한 것을 생각해보십쇼. 서구의 개화된 사상을 받아들인 일제가 그 정도 사리 분별도 못해서 전쟁하는 마당에 시간 아깝게 사회 유명인사들 움지여서 강연 시킵니까? 인간은 먹고 입는 것이 궁핍해도 자신의 사상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정치적 동물입니다.
Commented by Esperos at 2009/02/18 15:34
인간은 먹고 사는 것을 위해서라면 자기 종교, 신념, 이상 따위 다 버릴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광신도는 언제나 소규모 집단일 수밖에 없어요. 전체대중과 비교하면 극소수입니다. 매 앞에는 장사 없고, 배고픈 데에는 신념이 없지요. 시? 그게 뭡니까? 전쟁터에 끌려가면 어찌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비하면 별 거 아니에요. 안 나가면 큰 불이익을 겪으라는 위협이 언제나 첫 번째지, 유명인사의 설득강연 따위는 부차적입니다. 그런 강연회는 강제참석이고, 대학생들은 징집 거부하면 휴학시킨 뒤 '넌 학생 아니니까' 강제징병.
Commented by 베른카스텔 at 2009/02/18 15:36
그리고 현대의 잣대로서 시인의 영향을 판단하면 안 됩니다. 일제 시대의 평균적인 군중의 의식 수준과 교육 수준을 고려해봅시다. 그때는 자신의 주관도 없는 이들이 수두룩했고, 유명인사가 이게 맞다고 하면 우르르 물려고 지지하는 게 일반적이었을 겁니다. 사상의 시장에서 엄청난 권위를 가진다함은 이런 겁니다. 지금이야 시 하나가 사회를 바꾼다고 하면 헛소리에 불과하죠! 하지만 일제 시대는 그랬습니다. 관리의 공문 하나보다 잘 나가는 스타 시인, 운동가들의 몇마디가 더 큰 영향을 주죠.
Commented by Esperos at 2009/02/18 15:39
현대나 지금이나 매 앞에 장사 없고 배고픈 데 신념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일본 본토에서조차도 강제징병하려고 갖가지 수단을 쓰는 상황. 유명인이 설득강연하고 유명시인이 시 좀 쓰면 '아 그렇구나' 하고 납득할 것 같습니까? 그런 덴 이론이 필요없어요. 저 유명인이 나더러 전쟁터에 나가라고 하는데, 그럼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거 뻔한데 "옳소!" 하고 싶을까요?
Commented by 베른카스텔 at 2009/02/18 15:42
자꾸 이상한 구도로 몰아가시는 것 같은데,
먼저 먹고 사니즘을 운운하시면서 일제 시대의 궁핍과 시의 영향력을 연계시킨 분은 ES님이십니다.
본래 제가 시의 권위를 강조하려는 바는, 시가 직접적으로 먹고 사니즘을 초월하여 징집에 엄청난 직접적 효과를 준다 함이 아니고,

그러한 불합리한 일제 체제를 합리화하고, 같은 편에서서,

체제에 저항하는 논리를 반박하는 기능을 가졌다는 점이 문제라는 겁니다. 본래 제가 강조하는 시의권위란 이런 점에 있었습니다.

사상의 시장에서 패배한 사상은 결국 실천적인 운동력을 잃게 되죠. 그게 바로 현실로 이어집니다. 징병이냐 아니냐는 사소합니다.
그러한 징병을 유발하는 사회 체제가 전복될 수 있느냐, 아니면 앞으로도 이렇게 똑바로 유지 되느냐는 사상의 힘에서 비롯됩니다.
서정주의 죄는 이러한 사상의 영역에 있지, 실체적인 통계적 피해에 있지 않습니다.
Commented by Esperos at 2009/02/18 15:43
일제시대, 그것도 세계대전에 참여한 일본과 식민지 조선 같은 특수한 상황에선 안 그렇습니다.
Commented by 베른카스텔 at 2009/02/18 15:45
일제 시대에 문인들이 현대에서의 지위보다 더 큰 영향을 가졌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만, 부정하시니 당황스럽습니다.
Commented by Esperos at 2009/02/18 15:47
식민지 조선의 징병 같은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냐 안 되느냐는 이론적으로 옳으냐 그르냐를 넘어서는, 대중들의 가장 큰 판단기준입니다. 아니, 사실 요즘 같은 상황에서도 그게 가장 큰 상황이고, 그런 기준은 극한 상황이 될수록 더 강해지지요.

시가 무슨 철학서적도 아니고...논리가 있습니까? 시가 논리와 설득을 바탕으로 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저항논리입니까. 그냥 이미지일 뿐인데, 징병 만세 시 따위 실제 징병대상자들은 외면할 뿐이죠.
Commented by 베른카스텔 at 2009/02/18 15:47
그 특수한 상황에서 작동하는 독립 운동과 그에 대한 반동으로서 작용하는 일제는 각자 나름대로 정치적인 사상에 기반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상의 논박이 치밀하게 지식인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것이 사실이고요. 사상 없는 희생 따위 없습니다. 일제는 이러한 점을 알고 있었기에 어용 지식인들을 이용해 일제 시대를 사상으로서 합리화했습니다. 일제 시대와 같은 특수한 시대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고, '그러한 상황일 수록 사상이 미치는 힘은 더'합니다.
Commented by Esperos at 2009/02/18 15:49
일제시대엔 현대보다 배고픈 문인이 더 많았죠. 껄껄. 글이 밥 먹여 주지 않기는 그 시절에도 마찬가지였고.
Commented by Esperos at 2009/02/18 15:52
지식인들의 논박은 같은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할 뿐이죠. 게다가 사회적인 담론으로 이어지지도 못했습니다. 일본 본토에서도, 사회적으로는 아무리 '천황폐하의 적자들이 신국을 위해 깨끗이 옥쇄한다' 같은 말을 하여도, 뒤로는 군에 가고 싶지 않아서 피하고, 혹 안 간 집안 있음 얄미워서 따돌리고. 사상이요? 언제나 실질적인 손익 여부가 최우선입니다.
Commented by 베른카스텔 at 2009/02/18 15:52
징병을 합리화하는 사상으로서, 그에 반동하는 독립 운동의 케이스를 들어보자고요. 독립 운동은 명백히 님의 잣대로라면
먹고사니즘에 위배됩니다만, 어떠했습니까? 수많은 열사들이 희생하여 조국을 바로 세웠습니다. 이래도 부정하시겠습니까.

이미지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시가 정치적인 이미지를 띤다면, 그 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궁극적으로 인간이 옳다고 정의하는 사상으로 수렴할 수밖에 없습니다. 순수한 이미지즘으로서의 사회와 유리된 시를
표방하고 있지 않음에야, 그러한 궤변은 안 통합니다. 징병 만을 보지 마시고, 징병이 일어났던 그시대에 유기적으로 벌어졌던 일제의 행위와
독립운동을 고려해보세요.
Commented by 베른카스텔 at 2009/02/18 15:55
지식인들간의 폐쇄적인논쟁은, 현대에서나 그러한 양상을 보일 뿐이지, 그 시대에 지식인으로 통칭 되었던 사회 운동가들과 문인들이 자신의 지식을 대중에게 널리 전파하던 그 시대의 특성, 그 시대에 군중의 평균적인 수준을 생각해본다면, 그러한 말씀은 하실 수 없습니다. 사회적인 담론이라 함은, 이렇게 공개적으로 합법적으로 누구에게 피살될 위험 없이 맘 놓고 글 쓰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일제가 이 체제를 옳다고 식민지민들에게 강제하고, 교육시키는 논리를 지식인이 반박하면 그게 바로 사상의 시장에서 일어나는 전투입니다. 실질적인 손익 여부를 강조하시는데, 그러한 점으로는 독립운동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운동을 하는 이들은 분명히 사상에 근거했습니다.
Commented by Esperos at 2009/02/18 16:02
독립선언 33인 중에서 변절하고야 만 사람이 몇이나 되지요? 전체 조선인 중에서 독립운동에 뛰어든 사람이 몇이나 되지요? 절대다수의 대중을 보세요. 그런 용기와 의지를 가진 사람은 드뭅니다. 어느 사회에서든 그건 마찬가지입니다.

대중을 설득할 만한 대외적인 이야기 중 일본의 공식방침을 거스르는 이야기는 일본에서든 조선에서든 불가능했습니다.
Commented by Esperos at 2009/02/18 16:04
여기가 남의 블로그이기도 하고, 저 또한 나가야 해도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Commented by 베른카스텔 at 2009/02/18 16:08
아주 정확히 보셨습니다. 서정주의 시를 통한 선동이 힘을 발휘하는 영역은, 대세적인 체제에 유리한 작용을 보이는 먹고 사니즘과 결합하여, 생명력이 희미한 독립 운동의 이념을 더욱 더 힘을 줘 짓밞는 효과에 있습니다. 서정주의 사상으로서의 권위가 힘을 발휘하는 대목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사회 지배 체제의 공고화죠. 저도 나가겠습니다. 이만
Commented by 두막루 at 2009/02/18 22:12
저... 일단 다른 이야기를 떠나서, 여긴 인터넷 카페 같은 공공 장소가 아니라 제 블로그입니다.
타인의 블로그에서 제3자 분들끼리 덧글을 계속 달아가며 토론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 이상은 두 분께서 따로 포스팅하셔서 논쟁을 지속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최소한 사과 한 말씀 정도는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미당 서정주의 생애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당대에도 시인으로서 유명하였던 그가 친일을 하고 해방 이후에도 rumic71님의 말씀처럼 전두환 정권을 찬양하는 등 그가 권력에 아부하였다는 점에서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참고로 친일이란, 친일 행위가 얼마나 민족에 피해를 끼쳤느냐 만으로 측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탈민족주의자는 친일에 민족 문제를 배제하고 인권 차원에서만 바라보자고 하던데, 만약 그렇다면 인권 상으로 직접적 피해를 끼치지 않은 이완용 등의 을사오적은 뭐라고 해야 할까요? 제가 본문에 쓴 글이 잘못 읽혀질 소지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광수의 친일에 대해서 저는 변호할 생각이 추호도 없으며 그를 갈데없는 친일파라고 봅니다(단지 본문 내용은 가정이었을 뿐).
Commented by Ha-1 at 2009/02/18 11:46
우리 모두는 잠재적 이명박 지지자...
Commented by 두막루 at 2009/02/18 22:18
사실상 저들의 논리대로라면 그렇게 되고 마는 셈입죠. 물론 지금 상황, 환경은 투표권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이니 일제시기와는 또 다른 측면도 있겠습니다.
저는 최소한 그런 표현을 비교상대자가 될 수 없는, 일반 국민들에게 덧씌울 것이 아니라 정치인들에게 붙여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라면 한국 정치사에서 잠재적 지지자는 꼭 있어왔지요.
Commented by 로가디아 at 2009/02/18 12:08
맞습니다...시대에 순응할뿐이죠...조선일보가 그랫던것처럼...
Commented by 두막루 at 2009/02/18 22:21
조선일보의 친일 문제도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사실 저는 조선일보를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친일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해방 이후에 그 경력을 갖고서도 기득권을 유지해왔기 때문입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근현대사 카테고리의 "친일파 청산에 딴지거는 논리에 대한 비판 둘."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는 이들입니다.
Commented by 쯔쯧 at 2009/02/18 14:03
그렇지 뭐,

촛불시위 나갔다가 두들겨맞고 돌아오고, 권력들에게 불응하면 검찰수사에 징역에 구속에 벌금쳐맞는데

권력에 붙어서 가스통들고 나가고, 철거민 패고, 뉴라이트 같은 단체 만들면 뭘해도 무혐의에 정부에서 보조금나오고, 애국자 취급받으니까

지금도 뭐 별반다른거 없다고 봄ㅋㅋ
Commented by 두막루 at 2009/02/18 22:25
비 로그인 님, 저는 제 블로그 공지에서 이미 2차례 씩이나 밝혔듯 활동 수칙을 분명히 준수해달라고 했습니다. 여긴 제 블로그입니다(이거 강조하는 제가 바보인가요). 게다가 얼마 전에도 이 문제로 포스팅했고요(이 포스팅 밑으로 3번째에 있으니 눈으로도 확인 가능한데요 ㅡㅡ)
존댓말은 당연히 기본 아닙니까? 차후 님 같은 분 때문에 비 로그인 덧글은 금지될 수도 있습니다. 제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으니, 꼭 지켜주십시오.
Commented by 천기누설 at 2009/02/18 14:38
잘한 점을 칭찬해줘야지 그렇게하지 못했다고 해서 비난하다니 어이가 없지 말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은 정말 대단하고 멋지고 두고두고 생각해봐야 할만큼 존경받을 만한 일을 한 분들이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해서, 가만히 있었다고 해서 비난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뭐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그리 할 때까지 너는 무엇을 했는가. 그를 만든 것은 너 자신이다 라는 말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거야 어디까지나 말이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죠. 겁쟁이는 불쌍한 거지 비난받을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뭐,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겁쟁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도 조금 말이 안되구요.
Commented by 두막루 at 2009/02/18 22:31
히틀러의 경우 국민들이 뽑아준 것이라는 점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가 더욱 전체주의로 박차를 가하면서 체제를 공고히 하는 과정 속에서 국민들이 이에 반대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을 겁니다. 이처럼 사회 환경이란, 그에 속한 사람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치게 마련입니다.

더욱이 근대적 대중사회로 보기도 애매한 일제강점 치하의 한반도 사회에 살았던 사람들을 잠재적 지지자로 비난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겠지요. 그리고 그런 만큼 독립운동가들이 얼마나 역경을 딛고 선 사람들인지, 우리는 그들을 다시 볼 필요가 있습니다(신으로 추앙하자는건 아니고요^^;).
Commented by 미스트 at 2009/02/18 14:38
직접 해외로 나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지 않고 국내에 남아 있었던 것은 일제 통치에 대한 순응이며, 이는 곧 잠재적 친일이다

<< 직접 반정책 시위에 나가 일선에서 투신하지 않고 키보드 앞에 앉아 찌질대는 것은 현 정책에 대한 순응이며 이는 곧 잠재적 우파이다!

.... 바꿔보니 재미있네요. 우하하.
Commented by 두막루 at 2009/02/18 22:32
제 생각에도 잠재적 친일 운운하는 사람은 너무 극단적 시각에서 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Commented by . at 2009/02/18 15:31
생각해볼 문제라고 썼을 뿐
Commented by 두막루 at 2009/02/18 22:34
비 로그인 님에 대한 덧글은 위에도 썼으니 참고 바랍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제 인내심을 한계점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Commented by 스무디 at 2009/02/18 15:37
그 점에서는 전 이렇게 봅니다만.

'적극적 지원과 강제적 동원'의 차이라고 봅니다만.사실 일제시대 징병만 해도 그래요.그저 강제로 징집받고 원하지 않은데도 끌려가는 경우와 자신의 지위상승과 성공,그리고 1등국민(?)이 되고픈 욕망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한 경우(대표적인 게 원스 어폰 어 타임에 나오는 그 조선인 출신 일본 장교)가 있지 않습니까?

강제적 동원의 경우 비협조적 자세가 보이지요.예를 들면 독립군 진영이나 연합군 측으로의 탈영이나 전투에 소극적인 자세 등으로.그런데 적극적 지원은 다르지요.오히려 '열을 내면서 인정받기 위해 달겨드는'꼴이니.

그리고 위의 논리가 적용된다면,앞서 어떤 분께서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는 '잠재적 이명박 지지자'인 셈입니다;;
Commented by 두막루 at 2009/02/18 22:39
물론입니다. 당연히 '적극적 친일'과 '강제에 의한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잘 알려진 사례를 들자면 박정희가 전자에 속하고, 장준하 선생은 후자에 속한 인물입니다.
박정희는 물론 일제 치하에서 태어나긴 했으나, 일제 강점 하에서 황군 장교로 출세하려는 생각으로 유일했던 반면, 장준하 선생은 일제에 의해 억지로 일본군이 되었다가 극적으로 탈출하고 광복군이 되었습니다.

특히 박정희가 용서되기 어려운 것은 친일 그 자체보다도, 해방 이후 그것에 대해 참회나 반성을 하지 않고 도리어 그 경력을 십분 활용하여 권력의 양지로 달려갔다는 점에 있습니다. 제가 친일파들 가운데서 가장 단죄해야한다고 보는 것이 바로 이런 부류입니다. 실제로 이들은 아직도 한국 사회의 각종 기득권을 지키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Commented by 파파라치 at 2009/02/18 15:47
남 까대기는 쉬운법.
Commented by 두막루 at 2009/02/18 22:41
그러게요. 타인을 비판, 비난하는 것이 목표, 목적이 되어서는 곤란한 일입니다. 그것이 인류 사회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기능할 때 적절한 것인데, 오로지 까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서 참 안타깝습니다.
Commented by 나인테일 at 2009/02/18 19:47
반성해야지요. 이명박이 지금 청와대 앉아있는 것도 내 탓 맞는듯. 아하하하.
Commented by 두막루 at 2009/02/18 22:42
하하 그럼 저도 머리 박아야 합니다. 아, 저는 그 때 대선에 참여치 않았으니 무죄라능...(도주)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02/18 20:34
댓글 폭탙 맞으셨군요. ;;;;;

그리고 해당 문제에 대해서는 이 포스팅에 달린 댓글들을 참조해보는게 좋을 듯 싶습니다.

http://moduru76.egloos.com/4068085
Commented by 두막루 at 2009/02/18 22:50
저도 학원 다녀와서 확인해봤는데, 말 그대로 깜놀했습니다. ㅡㅡ; 그냥 고 김수환 추기경과 관련해서 끄적이고 만 글인데, 설마 이게 이글루스 메인에 뜰 줄이야...
이미 전 포스팅이 있었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윤민혁님의 말씀처럼, 사실 당시(일제 말기) 징집된다는 압박감은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사례만 해도, 일본이 고당 조만식 선생의 아들(몇째인지는 기억이..;;)을 어떻게든 징집하려고 했고, 고당 선생은 이를 어떻게든 저지하려고 했지만 결국 아들이 입대했습니다. 물론 독립운동가인 아버지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였습니다. 고당 선생이야 유명인사지만, 그 외 일반인들도 비슷한 처지였을듯 합니다.
Commented at 2009/02/18 23:06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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