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라는 개념에 대해서 한마디.

남해 다녀온 사이 이글루스에서 친일파라는 표현에 대한 논쟁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한데 글들을 읽어보니 대경할 지경이군요.

각설하고, 친일파라는 단어에 대해서만 한마디합니다.


1. '친일파'는 "친일파 청산에 딴지거는 논리에 대한 비판 하나" 글에서도 정의했듯이 2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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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잘 알려진 바처럼 "1904년 러일전쟁이 끝난 이래로 일본 제국주의의 정책에 협력하며 자신들의 안위를 지키고 작위 등 온갖 혜택을 받은 사람들"로 정의할 수 있으며, 다른 하나는 말 그대로 "일본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려는 생각이나 태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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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람된 말이지만, 많은 분들이 이것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현재 일본과의 동맹을 외친다고 친일파라고 부릅니까? 한국은 60년대 미국을 정점으로 일본과 함께 3각 공조 체제를 구축했으니, 그 이래의 한국과 한국인들은 전부 친일파입니까?


친일파라는 단어의 애매함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보아야 겠습니다. 후자처럼 단순히 일본과 친밀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친일파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친일파'라는 용어 대신에 '부일협력자', '숭일파(崇日派)' 등으로 대체하자는 주장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당연히 이들은 전자, 즉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하며 자신들의 안위를 지키고 작위 등 온갖 혜택을 받은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성급하게 친일파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나, 반일 이승만 정권에 친일파란 있을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이나 모두 친일파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2. 친일파가 정말로 일본을 그토록 좋아해서 친일을 했는가?


친일파는 해방 이후에도 친일을 해야만 친일파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친일파들이 친일을 했던 것이 지탄받는 이유는 외세에 빌붙는 그 성격 때문이지, 오로지 일본에 충성하기 때문 만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물론 일본에 오로지 충성하는 놈들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대부분은 기득권 유지를 위해 탈바꿈을 하는 놈들임을 잊어선 안됩니다.


조선시대 명나라가 망해가는 와중에도 끝까지 모화주의, 존화주의를 내세우던 사대부들 모두가 명나라를 그토록 흠모해서 숭명을 외치고 다녔을까요? 물론 그들 중에도 명나라를 짝사랑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명이라는 주자학적 질서의 힘을 빌어 자신들의 권위를 지키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친일파들은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귀축미영을 박멸하자"고 외칠 정도의 반미파였는데, 광복 이후 이승만 정권 측에서 자신들을 비호해 주니까, 자신들의 기득권만 유지할 수 있다면 바로 친미로 성향을 바꿔버렸습니다.


이승만 정권에 참여했던 친일파들이 이승만 정권을 따라 반일 외교를 벌인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기득권 유지에 있었으니까요.



친일파에 대해 토론하기에 앞서서 이 두 가지는 꼭 숙지해주셨으면 하는 바, 삼가 글을 적습니다.

by 두막루 | 2008/08/17 17:19 | 근·현대사 | 트랙백 | 덧글(7)

남해 지역을 다녀왔습니다.

8월 중에서 광복절을 끼고 있는 이번 주말을 피서 기간으로 정하는 분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일요일에 돌아온다면 길이 막힐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제 밤에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조금 막히더군요.;;


첫날, 가장 먼저 간 곳은 공룡 화석으로 유명한 경상남도 고성이었습니다. 남해라는 것 외에는 자세한 장소를 몰랐던 저로서는 꽤 놀랍고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고성공룡박물관에 들러 많은 것을 보았는데, 입구가 2층에 있는 특이한 구조였습니다.


일단 입구를 통해 들어가서 티라노사우루스(Tyrannosaurus), 벨로키랍토르(Velociraptor), 투오지앙고사우루스(Tuojiangosaurus) 등의 골격 화석과 시조새 화석을 보았습니다. 골격 화석은 아마도 대개는 복제품일 것으로 생각되지만, 직접 가서 골격 화석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에는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말로만 듣던 13m의 티라노사우루스 크기를 실감한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급하게 보고 나온 까닭에 티라노사우루스의 빈약한 앞발을 눈여겨보지 못한 점이 아쉬웠습니다. 그 옆에 벨로키랍토르가 있어서 크기가 확연히 비교되더군요. 저보다도 작은 공룡이라 귀여워 보이기도 했지만, 나중에 이들과 가까운 드로마이오사우루스(Dromaeosaurus) 무리가 자신들보다 큰 초식공룡을 사냥하는 모형을 보면서 이들이 포식자였다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2층의 제1전시실을 나와 중앙을 보니 밑에는 큰 용각류 공룡과 그보다는 작은 육식공룡의 골격 화석이 있었고, 위에는 익룡인 프테라노돈(Pteranodon)과 케찰코아틀루스(Quetzalcoatlus)가 있었습니다. 용각류 공룡은 앞발을 들고 높이 서 있는 모습으로, 웅장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제2전시실에는 여러 공룡의 발자국 화석들을 보았습니다. 발자국 화석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리고 여러 공룡들의 발자국 화석의 모양 비교와 새의 발자국 화석 등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었다는 코리아나오르니스 하마넨시스(Koreanaornis hamanensis)라는 새 발자국도 보았습니다.


3층에서는 티라노사우루스의 두개골을 보았는데, 양 팔을 뻗어야 할 만큼 큰 머리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육식공룡 중에서도 머리가 가장 큰 편에 속하며, 당시에는 최강의 무기였을 것입니다. 3층의 바깥에는 앞바다와 여러 섬들이 보였는데, 경치가 매우 좋았습니다. 그 중에 욕지도라는 섬이 있었는데, 다음날 TV에도 간간히 나오더군요. 박물관 밖으로 나온 뒤 해안가의 공룡 발자국 화석들을 몇 개 찍었습니다.


아쉽게도 박물관 내에서 골격화석 등을 사진 촬영하지 못하고, 밖에서 몇몇 공룡 모형들과 사진 찍는 것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안내 책자도 없는 점 때문에 안타까웠는데, 오늘 홈페이지를 확인해 보니 안내 책자는 무료로, 보내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나중에 따로 안내 책자를 배송하는 것보다는 박물관 견학 때 받는 것이 훨씬 편할 것을... 제가 안내 책자 받는 곳을 못 찾은 것일까요. 분명 입구에서부터 들어가 둘러보고 나왔는데...


고생물에 관심이 많은 까닭에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군요. 다음해 고성에서 공룡세계엑스포가 열리는데 성공적으로 개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이틀째인 금요일에는 경남 상주해수욕장(이름이 상주라 경북의 상주와 혼동되었습니다.;;)에서 물놀이를 즐겼습니다. 중학교 때 이후 오랜만의 기회였습니다. 햇빛이 내리쬐지 않아서 몸은 별로 타지 않았습니다.


오후 5시 쯤, 비가 오기 시작하여 이후에는 올림픽 경기 방송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선수들이 아쉽게 지는 모습을 보는 안타까운 날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들의 모습에 찬사를 보냅니다.


다음날 토요일에는 전라남도 여수로 가서 회정식을 먹고 오동도라는 섬에 갔습니다. 오동나무에서 이름을 딴 이 섬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동백열차라는 관광용 차량을 타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섬 내부는 산책로가 이어졌는데, 일출을 보는 곳 등등 여러 장소들을 구경했습니다. 섬의 정상에는 오동도등대가 있었고, 그 안에서 남해바다를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구 부분에 있는 음악분수를 보았습니다.


이곳 여수에서도 2012년 세계박람회가 열리는데 역시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드넓은 바다로 뻗어나갈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를 가진 우리나라가 앞으로 발전하기 위해 여수를 비롯한 해양도시들의 중요성이 높아져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밤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중간에 길이 막혀서 중간 휴게소에서 역도 경기를 보았습니다. 장미란 선수가 세계 신기록을 막힘없이 세우는 모습을 보면서 통쾌함을 느꼈습니다.


고성군과 여수시에서 세계박람회 개최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이곳 주민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느낍니다. 2009년과 2012년을 기다리며...

by 두막루 | 2008/08/17 16:36 | 일상 | 트랙백 | 덧글(0)

가족여행 다녀옵니다.

12시가 지났으니 오늘이라고 해야 겠네요.. 오늘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3박 4일 가족여행 다녀옵니다. 장소는 남해로 정해졌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기간이 이렇게 정해진 결정적 이유가 광복절 때문이었습니다. 광복절인 금요일에 이어서 토, 일까지 휴일이니...; 덕분에 '건국 60주년 기념 축하'라는 거창한 소리는 듣지 않을 수 있겠군요. 뭐 굳이 그 말이 싫어서는 아니고, 그 말을 외치는 자들이 싫다는... 하하;

반 농담으로 한 소리지만 정말 뉴라이트에서 말하는, 광복절의 의미도 퇴색시키는 건국절이 되지는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밤 중에는 할 일이 별로 없다 하니 "공룡 구출 대작전" 동영상이 담긴 mp4(mp3가 너무 익숙한지라 mp4는 어디서 온 듣보잡마냥 들린다는..;)를 들고 가서 열심히 보아야 하겠습니다. 포스팅도 하기로 되어 있는데 아직도 3편까지밖에 못 보았기 때문에 지금 올리기는 좀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포스팅은 각 공룡 별로 나누어서 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 때문에...


암튼 위와 같은 이유로 일요일 아침까지는 잠수 탑니다.

by 두막루 | 2008/08/14 00:27 | 잡담 | 트랙백 | 덧글(1)

식용 개, 고양이에 동물애호사상이라니...

예전부터 개인적으로 생각하던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생명을 죽이는 것은 비도덕적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디까지 적용해야할까?” 라는 의문이 들면서 이것이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耿君님께서 모기를 잡은 것에 대해 고민하신 내용의 포스트를 읽어보았습니다. 물론 모기를 하찮게 여기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저도 별로 다를 바 없습니다. 생물에 호기심이 있어서 어지간한 생물들은 싫어하지 않는데(심지어 일부에서는 징그럽다는 파충류조차도 좋아합니다. 다만 공격한다면 두려움을 갖는다는 정도랄까요), 유독 벌레만큼은 징그러워서 만지는 것은 물론이고 근처에 있기만 해도 싫어합니다. 그래서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보이기만 하면 반드시 잡아서 화장실에 버립니다. 하지만 벌레를 잡는 것도 생명을 죽이는 행위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비도덕적 행위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 저는 확답을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耿君님처럼 미안한 마음을 갖는 분도 계실 것이고, 별것 아닌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래전부터 논란이 되어왔던 일부 프랑스인들의 한국 개고기 식사 비난도 프랑스인들에게는 개, 강아지가 친근한 존재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프랑스인들은 거위 요리를 먹기 위해 거위를 죽입니다. 가장 맛있게 먹기 위해서 거위에게 비정상적으로 사료를 듬뿍 먹인다는 것도 요즘엔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일부 프랑스인들의 주장에 따른다면 개는 소중해서 먹을 수 없고, 거위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생명의 가치가 과연 저마다 다른 것일까요? 인간은 자신들이 가장 고등하다고 생각하지만, 생물계에는 ‘정점’이 없습니다. 과연 코끼리와 말, 사자 중에서 어떤 동물이 정점에 가깝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이들의 생명은 모두 소중합니다. 저는 생명의 가치는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과연 다른 생물에 대해 전혀 살상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가?” 를 생각해보면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먹는 음식들의 재료는 거의 모두 생물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이는 인간도 생물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생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야생에서 호랑이가 사슴을 잡아먹는 행위도 호랑이에게는 엄연한 생존을 위한 것이듯, 우리가 각종 생물로부터 만든 음식(표현이 좀 이상하게 느껴지는...;)을 먹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 타 생명을 죽이는데, 제아무리 생명 존중을 주장한들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생명을 죽이는 것은 비도덕적 행위”, “생존을 위한 살상”이라는 두 가지 상충되는 가치 속에서 한 가지를 택하거나, 그 사이의 접점을 찾아야합니다. 그런데 두 가치 중 한 가지만을 택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생명을 죽이는 것이 비도덕적이라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살다가 죽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자기 생존을 위해서 살상을 한다고, 타 생명체를 마구 살상해서도 안 될 일입니다. 결론은 두 가치 사이의 접점을 찾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최근 제가 자주 활동하는 역사 카페의 자유 게시판에 어떤 분이 “88 개, 고양이 식용금지법 제정 범국민 대회” 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셨는데, 곧 그 분의 글에 반론 댓글들이 올라왔습니다. 소, 돼지, 닭은 개, 고양이와 다르게 취급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저 개, 고양이를 좋아하는 자들의 모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개고기 좋아하는 사람은 국민도 아닌가(한단인님) 등등... 댓글을 쓴 분들의 의견처럼, 개, 고양이를 먹는 것에 대해 동물애호사상을 내세우는 것은 뭔가 잘못된 이중 기준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동물애호사상에 개, 고양이는 포함되고 나머지는 제외되는 것인 걸까요?


식용 개, 고양이 고기를 먹는 것과 애완동물의 문제는 분리해서 바라보는 것이 합당한 기준이 아닐까요? 식용으로 먹는다고 욕하는 분들도 필히 다른 동물들을 먹고 살아갈 텐데, 그분들이 고양이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 동물애호사상을 내세우는 것을 보면 가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번 가정해 봅시다. 맛있는 치킨 먹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누군가 끼어들어서 닭 애호사상을 내세우며 먹지 말자고 한다면, 그 논리를 다른 음식들에도 적용해야 할 것이고...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어죽고 말 것입니다.


“어차피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생물을 먹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개를 먹지 말아야 한다면, 식물은 왜 먹습니까? 식물도 생명이 있는 존재인데요. 아무것도 먹지 말아야죠. 애완동물과 먹는 문제는 분리해서 생각할 문제입니다.”


저는 위와 같은 댓글을 달았는데, 어떤 분이 ‘풀떼기’를 뭐 하러 이야기했냐고 말씀을 하십니다. 과연 식물은 동물보다 못한 존재인 것일까요? 게다가 제 주장의 핵심이 정말 아무것도 먹지 말자는 것이 아닌데... 마지막에 분명히 “애완동물과 개고기는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 는 말을 명시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반론 리플이 달리는 것을 보니 폭염이 심하긴 심한 모양입니다. 설마 저 말(아무것도 먹지 말아야죠)을 말 그대로 인식하셨는지... 논쟁(?)이 빨리 해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s 어떤 밸리에 올려야 할지 마땅히 정하지 못해서 일단은 세계 밸리에 올려봅니다. 적당한 밸리를 말씀해주셔서 떠도는 글을 구원해 주십시오.(__)

by 두막루 | 2008/08/13 20:46 | 잡담 | 트랙백 | 덧글(6)

위구르, 티베트와 함께 - 조선족도 잊지 말자.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기 전 중국에서 위구르, 티베트 사태가 불거져 나왔고, 이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올림픽을 보이콧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바 있었고 이곳 이글루스에서도 이들 소수민족들을 기억하자는 글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필자가 어제 신문을 보면서 그들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족.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 든 생각”의 마지막 덧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조선족들은 중국의 일원으로 나와서 공연했다. 특히 88올림픽 때 한국의 문화로 소개된 부채춤이, 이번에는 중국의 지방 문화로서 소개되었으니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꺼림칙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 장구춤을 추고 있는 조선족.


올림픽 경기가 한창인 이맘때 올리는 것은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한국인으로서 티베트, 위구르 등과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우리의 동포 조선족을 기억해야한다는 생각에 글을 올려본다. 특히 이번 개막식 때 조선족들이 중국인으로서 공연에 나온 것에 대해 조선족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없기를 바라는 것도 글을 올리는 이유의 하나이다.


흔히 듣기를,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가 있으니 한국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정확히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 같은 민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외세에 의해 억지로 분단된 나라는 동아시아 지역에 두 나라가 있다. 한국과 몽골. 몽골은 현재 몽골국, 중국 내 내몽고자치구, 러시아 내 브리야트 공화국(과거 명칭은 브리야트 몽골 자치공화국이었으나 러시아측에서 몽골 명칭을 삭제하였음)으로 분단된 형태이다. 한민족도 자세히 보면 몽골과 비슷하게 3등분할 되어있다. 남북한과 조선족. 현재까지 위구르나 티베트가 중국에 완전히 강점되어있다면, 몽골인과 한민족은 일부가 강점된 셈이다.


우리는 간도(間島) 수복을 늘 주장해왔지만, 정작 잊고 있는 것이 있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 그러나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간도를 수복한다는 것은, 같은 동포들(조선족)이 하나의 정치체 내에서 같이 살자는 의미라는 것을. 간도에 관심 있는 사람이 조선족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사상누각이며, 그곳 주민인 조선족들의 의사를 무시하는 ‘한국적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간도는 그 기원이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의 강역이었고, 조선 세종 시절의 기록에도 그런 인식이 보인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북방 영토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는 명나라 중심의 안정된 국제질서 속에서 영토 분쟁이 잦지 않았던 점과 조선의 지배층이었던 사대부들의 주자학적 인식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지배층부터 별로 중시하지 않았으니, 일반 사람들도 별로 우리 영토라는 인식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엄연히 국가적 차원에서는 청나라와 갈등을 지속해온 사안이었고 결국 근대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19세기 후반 서구의 침투와 함께 영토와 국경을 중시하는 근대적 영토관이 도입되었고, 이에 따라 신흥 국가 대한제국은 간도에 관리사를 파견하고 함경도에 편입시켰으며,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조항을 포함한 법령을 발포하기도 했다. 이후 일본이 을사조약을 통해 강탈한 외교권으로 1909년, 청나라에게 간도를 넘겨주고 만주 철도 부설권을 넘겨받는다는 간도 협약을 체결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간도는 청에 뒤이은 중화민국(1911)의 영토가 되었지만, 간도를 포함한 만주 지역은 한국이 강점된 이후 항일투쟁의 장소, 해방구로 주목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였다. 독립운동의 주요지역이 되었던 간도의 주민들은 해방될 때까지도 전혀 타국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례로 조선족 중에는 조선의용군에 참여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는데, 이들은 해방되기 전까지는 중국 국적을 갖지 않았고 모두 조선인으로 보았다.


게다가 “중국 정부 - 적대적 공범자의 전형” 글에서 언급하였듯이 중국이 만주를 차지할 권한 같은 것은 없었다. 일제가 만주를 점령하고 만주국을 세운 명분도 이것이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만주는 일본을 쫓아낸 소련의 관할 하에 들어갔다. 소련은 간도 지역을 한민족의 영토로 인정하고 있었고, 따라서 북한에게 넘겨주려 했던 적도 있었다(기사 클릭).


조선의용군에 참여했던 조선족들은 자기 나라 문제가 아닌데도 중국을 돕는다는 취지에 따라 국공내전에 참전했었다. 그리고 내전이 끝나자마자 그들은 곧바로 6·25 전쟁에 투입되었다. 북한 인민군으로서 참전한 사람들도 있었고, 중공군으로서 참전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때까지도 그들은 단지 조선인이었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참전의 댓가로 소련으로부터 만주의 권리를 완전히 인정받은 중국은 전쟁 직후 북한에 가지 않고 남은 그들에게 중국 국적을 강요하였다. 사회주의 국가들 사이에서는 그 나라 공민으로 포함되는 원칙이 있었다고 하지만, 조선족의 경우는 이미 그들이 살고 있던 간도라는 터전이 중국에게 ‘강점’된 상황에서 행해졌기 때문에 부당한 것이었다. 중국 국적으로 강제 편입된 조선족들은 문화대혁명 때에도 민족주의적 측면에서 탄압을 받아야 했고, 이러한 트라우마는 현재까지도 조선족들의 뇌리에 각인되어있다.


이렇듯 중국인으로서 살기를 강요받았던 조선족이기에 그들이 생존을 위해 조국을 중국이라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이러한 역사는 우리민족이 약했기 때문에 일어난 수난이었으며, 강점된 조선족은 물론이고 그들과 분리된 남북한에게도 상처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조선족의 역사를 모르고 우리가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필자가 이제껏 보아온 조선족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글을 보면, 일부 사람들로부터 받은 좋지 않은 감정으로 조선족 전부를 비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필자가 중국에서 만난 조선족들은 같은 문화를 지닌 동포 그 자체였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조선족들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도 참여했던 사람들이다.


필자는 이런 가정을 해본다. 지금 그들이 생존을 위해서 현실적으로 중국이 강하고 대국이니까 중국인으로서 처신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만약 중국이 약해지고 한국이 통일되어 강해진다면 조선족은 한국인이 되고 싶어 할 것이다.


위구르, 티벳 등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중국에게 강점된 채 살아온 조선족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리고 이들이 중국인으로서 살고 있다고 성급하게 ‘중화민족이 다된 놈들’, ‘매국노’라고 비난하지 말자. 정말로 간도를 회복하고 싶다면, 조선족도 같은 민족으로서 포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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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조선의용군, 국공내전, 6·25 전쟁에 참여했던 조선족 관련 이야기는 『중국조선족 증언으로 본 한국전쟁』을 참고하였고 조선족의 중국 국적 강제 편입과 문화대혁명 피해 문제는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 카페의 미주가효님의 글을 참고하였습니다.

by 두막루 | 2008/08/10 19:45 | 근·현대사 | 트랙백(1)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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