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 조봉암 서거 50주기를 추도하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87796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는 오랜만입니다. 모 사건 이후로 블로그 활동은 거의 접었는데, 오늘의 이 일은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고 특정한 정치색을 떠나서 모두에게 존경받아야 할 분이라고 보기 때문에 짧게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죽산 조봉암(1898~1959)


제가 저 기사를 보면서 너무나 안타까웠던 것은, 한국 민주 항쟁의 역사에서 한 획을 남기고 가셨던 분인데 젊은 세대들이 죽산 선생을 모르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정말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 그 분을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낯을 들 수가 없습니다. 한국인들은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둘 다 이루어냈는데, 왜 경제 성장의 대명사로서 박정희만 기억하고 민주화의 효시로서 죽산 선생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앞으로 죽산 선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조금씩이라도 늘어갔으면 좋겠는데, 현실은 더욱 묻혀져 있는 것 같아서 슬픕니다. 이 짧은 글이 그 분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길 바라며,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by 두막루 | 2009/07/31 23:07 | 시사 | 트랙백 | 덧글(3)

이번 사건에 대한 본인의 결정.

먼저, 오해가 있을까 하여 적습니다. 여기서 ‘이글루스’라 호칭함은 당연히 운영진님들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유저 분들을 가리키는 말도 아닙니다. 그저 제 글과 덧글에 대한 반응을 보이셨던 불특정 다수 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해당 글을 올린 목적을 아직도 잘못 이해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간도 문제에 대한 토론을 정말 하고 싶으시면, 직접 자신의 블로그에 포스팅으로써 올리시면 됩니다. 그러나 저는 당초 이 문제로 진지하게 토론을 하고자 밑의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언론사의 직무유기니, 간도에 대한 조선 양반들의 인식이나 실제 행정력의 미미함을 아무리 말씀하신들 제 주장에 별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아실 겁니다. 저는 경향의 주장이 100% 옳다고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한 주장에 대해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모습에 반대하여 글을 올린 것이니까요. 제가 보았던 경향의 주장에 대한 당신들의 처음 반응은 전부 다 ‘환빠’ 한마디였습니다. 그래도 아니었다고 변명하시겠습니까?


이번 사건을 통해서 저는 이글루스의 분위기에 대해 심히 실망하였습니다. 나름대로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한 결과 앞으로는 제가 링크를 한 이웃 블로거 분들 외에는 거의 교류하지 않을 것이며, 더욱이 제 포스팅에서 이글루스 유저 분들의 주장에 대해 비판하는 글은 앞으로 올라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그 영향이라는게 그저 돌멩이 하나 던지고 만 격이 되었음을 알았으니,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비효율적인 것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낭비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정확하게 알고 계십쇼. 엄연히 이글루스라는 하나의 공적 토론 공간에서 이런 식의 분위기야 말로 예전에 어떤 분-저와는 반대의 정치 입장을 가지셨던-이 말씀하셨던 ‘마녀사냥’이라는 것을.


p.s 일단 저의 목적이 이렇기에, 이 사건은 토르끼님 개인을 타겟으로 한 것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이글루스 유저 분들을 대상으로 한 것임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토르끼님 블로그에서 제3자들과 논쟁을 벌이며 약간의 난동을 피운 것에 대해서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p.s 2 언젠가 이미 방문자 수가 10000명을 넘어섰는데, 2개의 포스팅을 하느라 정작 이에 대한 글은 올리지 못했습니다. 뭐 앞으로 방문하시는 분들도 거의 없을 텐데, 이거 갖고 기뻐할 필요는 없겠죠. 어찌되었든 저의 글 하나를 읽으러 와주신 1,557 분께는 감사드립니다.

by 두막루 | 2009/05/05 12:13 | 공지 | 트랙백 | 덧글(6)

왜 맹목적으로 동의만 하십니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경향신문 보면 안되는 이유 (토르끼님 포스팅 트랙백)

안타깝습니다. 왜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한 분도 없지요?

다양하게 생각하고 토론하는 가운데 건전한 토론 분위기가 조성되지, 이렇게 다른 생각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토론이 아닙니다. 또한, 역사 주장을 이렇게 해서는 아니 되지요.


제가 활동하는 역사 카페에서 어떤 분이 쓴 글을 옮겨보겠습니다. 해당 사이트에서도 어떤 분이 경향신문에 대해서 국수주의, 제국주의라고 말씀하신 것에 대한 답변으로 올라온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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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에서 보인 '간도의 면적' 이 지나치게 넓은 듯하여 문제라는 취지라면 그에 대한 이유는 있다는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그 이유가 옳은지 그른지는 독자가 판단할 문제겠지만요.


그 논리의 핵심은, '강 상류에 대한 경계는, 해당 강이 바다와 접하는 최하류까지 뻗는다' 라는 명제에 근거합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그 경향신문 간도 사진의 논리는, 1. 간도 영유권은 '백두산 정계비' 에 의해 동위토문-서위압록으로 한다. 2. '토문강' 은 송화강의 지류 중 하나(대략 이도백하 정도로 보는 듯)이다. 3. 송화강의 상류 중 하나인 토문강에서 시작된 경계는 토문강에서 송화강을 따라 흑룡강(아무르강)에 접어들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이 논리에 따른 간도 경계가 경향일보 지도상의 간도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에 대해서 모두가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논리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서위압록이라 할 때에는 정계비 부근의 압록강 최상류로부터 압록강이 바다에 접하는 곳까지의 강줄기를 경계로 삼는다면, 같은 논리로 동위토문이라 할 때에도 정계비 부근의 토문강줄기로부터 바다에 이르는 강 전 구간을 경계로 삼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 경향신문상의 그 지도 주장인 것이지요. 참고로 간도 영역을 경향신문 지도와 같이 보는 인식은 이미 고종 대(<북여요선>(1903)의 기사)에 존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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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의 지도는 간도 문제에서 가능한 최대치를 주장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즉 근거도 없이 확대 날조한 것은 아니라는 것임). 그런데 이를 두고 일방적으로 비난만 하는 것은 좋은 자세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저도 간도 문제에 있어서 하류까지 완전히 포함시켜 보는 것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방적인 분위기가 이글루스를 지배하는 것 같아 포스팅해봅니다.

by 두막루 | 2009/05/04 21:35 | 역사 | 트랙백 | 덧글(39)

일부 한국인의 의식 수준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며칠 전, 다음 카페에서 역사 관련 문제로 토론하던 중 이런 주장을 접했다. 그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북한에서는 고구려 정통론을 내세우고 신라를 폄훼한다.

→ 남한에서 고구려를 부각시키고 신라를 폄훼하는 인식은 좌익에 의해서 확산되고 있다.


지난번 금성출판사 교과서의 좌편향 떡밥("금성출판사 교과서는 좌편향입nida 전교조가 골수 지지하잖아요" 포스팅 참조)과 매우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일단, 저 주장에서 첫 번째 내용, “북한에서는 고구려 정통론을 내세우고 신라를 폄훼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북한은 독재국가로서 그들 학계의 입장이 곧 공식 입장이기 때문에, 이것은 북한측 서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주장이다. 필자 역시 이것에 이견은 없으며, 이를 비판하고자 포스팅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로부터 도출되는 후자의 내용(“남한에서 고구려를 부각시키고 신라를 폄훼하는 인식은 좌익에 의해서 확산되고 있다”)이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 아니 남한 사람들 전부에게 묻고 싶다. 정말 여기에 어떠한 논리적 상관관계가 성립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비논리적 생각에 빠져 있다.


지난번 금성교과서의 좌편향 떡밥에서도 주장이 겹친다고 해서 그 주장을 그렇게 매도할 수는 없다는 것을 거론한 바 있다.


고구려를 강조하고 신라를 폄훼시키는 주장은, 역사를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에 의해서 시작된 주장인지 알 것이다. 바로 단재 신채호를 비롯한 근대 민족주의 사학자들이다. 아시다시피 이들은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신라를 당이라는 외세를 끌어들여 불완전한 삼국통일을 이룩한 나라로 비판한 반면, 당과 맞서 싸운 고구려를 높이 평가했다. 그렇다면 이들의 주장이 북한과 같으니 민족주의 사학자들을 좌파라고 비판할 참인가? 북한도 없던 시절인 것을 생각하면 이는 우습지도 않은 얘기다.


비슷한 오류를 하나 들어보자.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고조선의 수도를 오늘날의 한반도 평양에 비정하였다.

→ 남한에서 고조선의 수도를 한반도 평양에 비정하는 사람은 식민사학자다.


이 역시 우습지도 않은 이야긴데, 왜냐하면 고조선의 수도를 한반도 평양에 비정하는 주장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에 의해서도 제기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식민사학이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의 사람들에게 식민사학자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물음은 집어치우고,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해보자. 그것은 바로, ‘고조선의 수도를 평양에 비정하는 것’과 ‘식민사학’ 간에는 그 자체의 논리적 상관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위의 주장도 마찬가지로 금방 무너진다. ‘고구려를 강조하고 신라를 폄하하는 것’과 ‘좌파적 인식’에는 어떠한 상관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필자가 이러한 내용으로써 비판했더니, 이제는 이런 반론이 들어온다.


좌익 인사가 고구려를 강조하고 신라를 폄하하면, 이는 북한의 정통성 논리에 힘을 실어준다는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

일단 ‘좌익 = 북한’이라는 인식도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는 차치하자. 필자는 어떻게 저런 결론이 도출될 수 있는지, 참으로 의아스럽다. 그렇다면 친일파 춘원 이광수가 남긴 문학작품들을 전부 친일문학이라고 무시해버릴 것인가? 물론 그 가운데에는 친일적 성향을 가진 문학작품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친일행적을 했다는 것과, 문학작품 하나를 남긴 것은 일단은 별개의 문제로 봐야 할 일이다.


마찬가지다. 한 인물이 좌익 활동을 한다는 것과, 고구려를 강조하고 신라를 폄하하는 고대사 인식 간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절대적 근거는 없다. 정말 그가 북한의 주장을 답습하고 있는지의 여부는, 그가 쓴 글을 직접 읽어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이것은 필자가 예전에 금성교과서의 좌편향 여부는 교과서를 직접 읽어보고 판단해야한다는 요지와 일맥상통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근대 민족주의 사학의 주장을 답습해서 그런 고대사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북한의 주장을 답습한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관심법으로?
반대로, 북한에서 신라를 강조하는 사람이 반동세력이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면 이것도 이해해줘야 하는 것인가?


필자가 이 포스트의 제목에 ‘일부 한국인의 의식 수준’이라고 썼지만, 과연 이 일부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인터넷 뉴스 기사의 네티즌 평란을 읽어보면 이렇듯 비논리적인 인식들이 너무나 곧잘 눈에 띤다. 한국에 좌파, 친북 세력들이 실제 얼마나 존재하는지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사람들을 무조건적으로 잠재적 친북 세력으로 규정하는 당신들의 인식을 먼저 두려워해야하지 않는가? 지금은 반공독재정권 시절이 아니다. 반공독재정권이 남겨놓은 트라우마가 얼마나 큰지, 다시금 절감하게 된다.


한국전쟁 등으로 좌익인사들에게 당한 원한이 있고 이를 이해해야한다고 할지라도, 이렇게 비논리적으로 타인을 비난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만약 그런다면, 결국 해방정국이나 독재정권 시절의 맹목적인 난투극상을 계속 재현하게 될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남북한의 냉전세력들이 원하는 진정한 파시즘의 시작임을 기억하라.



p.s 본문의 요지가 아니라서 쓰지 못한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남한 사회에서 ‘고구려를 강조하고 신라를 폄하하는 인식’은 대체적으로 근대 민족주의 사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필자는 이런 인식은 지나치게 근대 민족주의적 인식이라는 색안경으로 역사를 바라본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조금 다르게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레포트 작성중이라 시간이 널널하지는 않지만, 이런 현실이 너무나 답답해서 1시간가량을 이 글 쓰는 데 투자한다. 잘못된 인식을 가져왔던 분들은 이 글을 읽고 곰곰이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by 두막루 | 2009/05/03 14:27 | 시사 | 트랙백(1) | 핑백(1) | 덧글(15)

차원에 대해 생각나는 이야기들.

http://navercast.naver.com/science/physics/325

다음 주가 시험인데, 여유롭게 자꾸 글을 쓰게 되는군요. ㅡㅡ; 그래도 놓치기에는 좀 아깝다는 생각도 들고, 꽤 전에 있었던 경험을 언제까지 미루기도 좀 그렇고 해서 써 봅니다.


네이버캐스트에서 꽤 유익한 글들을 간간히 보게 되는데, 이번 글의 주제인 ‘차원 문제’(4차원 소녀 하는 식으로 농담 삼아 하는 이야기 말고 물리학에서의 개념)를 보니 2가지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TV 프로그램 서프라이즈에서 방영했던 ‘4차원 TV 이야기’였습니다.

시간을 뛰어넘어 한 인물의 과거와 미래의 모습을 모두 보여주었던 TV에 대한 이야기라 매우 인상 깊게 보았고, 지금까지도 절대 잊지 않고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인터넷 서프라이즈 사이트에서 해당 프로그램의 다시보기를 해서 볼 수 있겠지만, 벌써 꽤 된지라 그렇게 찾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내용을 간략히 이야기하면, 영국(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의 어떤 사람이 통나무집에서 살았는데, 밤마다 TV가 갑자기 켜져서 이상한 영상이 나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의 어린 시절 모습, 그리고 그가 죽은 후 묻힌 묘지 앞에서 부인이 우는 광경이었습니다. 실제로 그가 이 이상한 영상에 충격을 받아 죽은 뒤에 묘지에서 같은 영상이 재현되었다고 하니, 더욱 소름이 돋는 이야기였습니다(이런 이야기를 쉽게 잊는다면 더 이상한 것이겠죠?).


진실 혹은 거짓에서 진실로 밝혀지면서 통나무집 내부 자체의 전파에 의해 발생한 4차원 현상으로 파악되고 있다는 해설이 나왔는데, 아무튼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이야기를 실제로 경험한다면 정말 충격적일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클라인 병(Klein's bottle)’이라고 하는 4차원 항아리입니다. 솔직히 과학에 관심이 있다고 해도 생물학이나 천문학 정도이고 물리학은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작년 문학 강의 시간에 조세희 씨의 작품 중에 “클라인씨의 병”이라는 글을 읽으면서 알게 된 것입니다.


뫼비우스의 띠는 자주 들어봤기에 알고 있었지만, 이것을 한 차원 높인 것이 클라인 병이라고 하더군요.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시면 이미지를 금방 확인하실 수 있겠지만, 이 병의 생김새가 쵸큼 특이합니다. 뫼비우스의 띠 몇 개를 이어붙이면 만들 수 있다고 해서 도전해보았지만 결국 포기한 경험이 있는... ㄱ-


무엇보다 가장 골 때리는 것은, 이것이 3차원(인터넷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미지)에서는 병의 한 쪽이 튀어나와서 옆으로 뚫고 들어가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4차원에서는 뚫지 않고 연결될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을 당최 이해할 수가 없어서 고민하다가, 결국 이것도 넘겨버림...;;


클라인 병


이 두 문제를 볼 때 4차원만 해도 놀라운 이야기인데, 여러 차원이 존재한다니 놀랍지요. 물리학은 젬병이라 수학적으로 복잡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 자체로 신기합니다.


차원 이야기를 보고 생각난 이야기를 주저리에 가깝게 끄적여 보았습니다. 혹시 클라인 병을 복잡하게 말고, 쉽게 설명해주실 수 있는 분이 계시다면 설명해주셨으면....(굽신굽신)


p.s 카테고리를 고생물에 한정시키다보니 이 글을 어디다 넣어야 할지 난감하네요.;; 일단은 시사 쪽으로 넣었습니다.

p.s 2 클라인 병 이미지를 추가했습니다. 아스트랄한 세계를 탐험해보시길~(응?)

by 두막루 | 2009/04/17 23:03 | 시사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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